<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에 관한 스테인드 글라스 - 시화 바오로 성당>
"주인음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사람 예수다."(사도행전 22, 8)
사람은 늘 변합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은 없고, 오늘과 같은 내일은 없는 법입니다. 삶이 변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그것은 말일뿐이고, 실제 삶은 자꾸만 변하는 법입니다. 만일 우리의 삶이 어제와 조금도 변함이 없다면 그것만큼 심심한 삶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은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유대교인에서 그리스도교인으로 다시 태어난 사건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자신의 의지로 행동을 하고 책임을 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던 바오로가 처음 나섰던 길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삶은 아니었습니다. 그때의 이름은 또한 ‘사울’이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와 그를 믿고 따르던 사람들과 악연을 맺었던 이유는 자신이 따르고 살았던 삶, 즉 율법을 중시하던 생활과 충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믿고 따랐던 대로 움직였던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한대로 행동합니다. 그렇게 움직이는 삶의 기준이 옳으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문제는 보통 심각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시대와 그 이후에 율법은 애초에 걸어왔던 올바른 길을 벗어나 일부계층의 이익과 삶의 편의만을 위한 논리였습니다. 그러했기 때문에 그런 교육을 받고 자랐던 사울의 삶의 정신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뜻과 일치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울은 그렇게 자신이 올바르다고 생각해왔던 삶의 규정을 따라 행동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갑작스레 그의 삶을 방해하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게 갑자기 변할 때가 있습니다. 자기 삶에 책임을 지고 행동하겠다는 뜻으로 세례를 받고 신앙인의 길을 시작하는 것이 그런 일의 하나일 것이고, 세례를 받고 신앙에 소홀한 길을 걷다가 마음을 되잡아 성실한 사람으로 바뀌는 순간이 그런 때입니다.
이러한 삶의 변화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한마디로 회심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끊임없이 회심을 호소하여 왔습니다. 우리의 죄를 들추어내어 비참한 처지로 내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오늘 2000여년의 교회 역사 안에서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결정적인 회심을 기억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사람들을 박해하는 데 앞장섰던, 아니 이러한 박해를 통해 예수님 자신을 박해했던 사울의 회심이 그것입니다. 박해자 사울은 회심을 통해 사도 바오로가 되어 온 세상에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고, 마침내 박해자의 손에 의해 죽음으로써 순교의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박해자에서 사도로 변해 가는 과정에 대한 사도 바오로의 담담한 증언을 우리는 오늘 독서에서 들었습니다. 이 증언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삶의 모습을 180도 바꾼 사도 바오로의 믿음과 겸손의 결단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박해하던 사람들의 편이 되어 생활하다가 이제는 박해받는 자가 된 사도 바오로의 회심은, 자신의 생각이나 생활에 젖어 좀처럼 여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우리 모두에게 정녕 위대한 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박해자를 복음의 선포자로 선택하신 하느님의 사랑의 섭리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의 부르심이 없었다면 사도 바오로의 회심은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회심은 개인의 성찰이나 결단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에 앞서는 하느님의 부르심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부르심에 귀 기울이는 사람만이 참된 회심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은 하느님께로 우리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가도록 이끄는 회심의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저버리고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나온 우리의 반역죄를 고백하고 다시금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 하느님께서 인류 공동체에 내려주신 평화와 정의를 외면하고 이기심에 젖어 분쟁과 억압을 되풀이했던 우리의 삶을 하느님의 평화와 정의로 다시 채우는 것,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우리의 십자가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회심의 신앙입니다.
이렇게 회심을 받아들이고 체험한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것은 복음 선포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먼저 예수님을 알게 된 것은 특권이라기보다 하나의 의무요 책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느님을 알고, 신앙 안에 사는 것이 진정 행복함을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하는 일들 중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일들이 그리 많지 않듯이, 즉 어렵고 힘들어도 해내야 하듯이 우리는 세례를 받으며 우리가 받은 우리의 세례의 사명을 다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명을 실천하고자 노력할 때 우리의 삶 속에 언제나 예수님께서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복음 선포의 삶이 나 자신과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여 모두가 복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우리도 사도 바오로와 같이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사도 바오로의 개종을 기억하며 어디선가 본 글을 묵상하며 맺고자 합니다.
가던 길 바꾸는 것이 쉽지 않지만,
당신의 말씀이시니 바꾸렵니다.
가진 것 버리는 것이 쉽지 않지만,
당신과 함께 하고자 버리렵니다.
잘난 나 감추는 것이 쉽지 않지만,
당신을 드러내고자 감추렵니다.
정든 땅 편한 곳 떠나는 것이 쉽지 않지만,
당신의 뜻 따르고자 떠나렵니다.
당신께서 주신 기쁜 소식
벗들에게 나누기 위해
당신이 가라는 곳 그 어디에라도
기쁨과 희망 안고 한걸음에 달려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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