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는 200여년 전에 선교사없이, 성직자없이 우리 선조들 스스로가 진리를 탐구하는 講學會란 모임을 天眞菴 聖地에서 개최하기 시작하여, 순수 학문연구 모임을 신앙수련회로 발전시켰고, 나아가서는 한국 천주교회 창립이라는 놀라운 결실을 맺게까지 하였다. 특히 신자들이 전혀 없던 그 때에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明道會, 庚申會, 天神會, 等을 만들어, 자발적으로 교회발전에 이바지함으로써, 자신들의 聖化와 救援을 위하여, 순교까지 하였다.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는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시작된 많은 평신도 신심단체들이 들어와서, 신자들을 열심히 살게 하고 있으나, 한국에 평신도 신심단체들을 보급시켜 준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국민의 절대다수가 가톨릭 신자들이고, 그 중에 신앙을 실천하지 않는, 이른바 냉담자들의 신앙생활 회복을 위해서, 대부분의 평신도 신심단체들이 출발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민의 절대다수가 비가톨릭 신자들이고, 가톨릭신자는 불과 전체 국민의 5% 미만이며, 그나마 남한 인구에 한해서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상황으로 보면, 200년 전 한국교회를 창립하고, 100년 박해를 극복해 온, 천진암강학회의 자발적인 신앙생활정신과, 代를 이어가는 순교정신이 훨씬 더 아쉽고,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평신도가 대부부인 103위가 시성되었듯이, 세계교회 내에서 볼 때, 한국 천주교회의 평신도들처럼 열심하고 희생과 봉사를 아끼지 않는 거룩한 평신도들이 매우 드물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렇게 열심한 한국 평신도들의 특성을, 세계교회 부흥과 발전을 위하여, 특히 전 세계 교회의 평신도 활동 극대화를 위하여, 더욱이 미래교회의 원동력이 될 평신도 사도직의 활성화를 위하여, 한국 천주교회 창립선조들을 본받는 "天眞會"의 창립과 그 활동을 전파시키는 일은 오늘의 교회 안에서 매우 뜻깊고 시의적절한 주님의 섭리라고 아니할 수 없다.
사실 이 天眞會가 처음 시작된 것은 1979년 가을이었다. 광암 이벽 성조의 묘를 그 분의 死後 195년 만에 찾아서 천진암 성지에 모신 후, 이 일에 참여한 新長聖堂과 山聖堂 靑年들 40여 명이 중심이 되어 天眞會를 조직하였고, 그 당시 이 天眞會의 주요임무는 천진암 성지의 성역화 사업, 특히 植木과 巡禮者 안내, 또 매년 6月 24日에 天眞菴에서 거행하기 시작한 韓國 天主敎會 創立記念日 行事에 奉仕하는 것이었다. 그 후에, 이와는 별도로 100年計劃 天眞菴 大聖堂 建立을 爲하여, 이에 參與하고자, 鴨鷗亭洞本堂의 婦人들이 中心이 되어, 天眞婦人會가 1986年度 未에 조직되어 아주 활발하게 일하며 성장하였다. 그리고 해외, 특히 미국에는 지부가 결성되어 1988년부터 서서히 活動하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1990年度에 와서 천진암성역화위원회 總裁 主敎님께서 天眞會 創立을 인준해 주심으로써, 교회법상 정식으로 平信徒 신심단체로 出發하게 된 것이다.
바라건대 전국의 모든 본당과 직장에 天眞會가 조직되고, 전 세계 모든 나라의 방방곡곡에까지, 한국 천주교회를 세우신 우리 평신도 선조들의 정신과 역할이 전파되어, 힘차게 자라고 꽃피어서 거룩한 결실을 맺게 되기를 바라며, "天眞會"에 입회하는 모든 이들에게 한국 천주교회 창립선조들의 축복이 풍성히 내리기를 비는 바이다.
1990年 4月 12日
指導神父 卞 基 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