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가 특히 문제가 되었던 시기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이다. 공의회 이전의 신학교과서들은 한결같이 교회를 "가시적이며 불평등한 완전사회"로 규정하였는데, 여기서 사회의 형상적 원인(causa formalis) 은 권위(auctoritas)였다. 이 틀 안에서 교회창립에 대한 논의는 자연스럽게 12사도의 선택 및 재치권의 부여, 특히 베드로의 수위권 부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사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당시 교회에 관한 헌장 첫번째 초안(De Ecclesia)도 이 구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교회 이해는 이미 더 이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교회가 무엇인지 의미있게 설명하는데 실패하고 있었고, 따라서 공의회 교부들 또한 절대 다수로 그 초안을 거부했다.
공의회는 루뱅대학의 몬시뇰 필립스(mons. Philips)가 제출한 새로운 초안을 바탕으로 교회에 대한 헌장을 다시만들었고,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Lumen Gentium)이다. 이 헌장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과 전망 안에서 교회를 이해한다. 교회는 그 무엇보다도 ‘신비’ 로 이해되었고, 여기서 ‘신비’ 개념은 사도 바오로를 따라, ‘하느님의 구원계획, 구원사건, 즉 그리스도 자신’ 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신비개념으로 교회를 이해하게 될 때 권위, 혹은 권한(potestas)은 더 이상 핵심개념으로 될 수가 없으며, 교회 창립을 말함에 있어서도 수위권의 제정(마태16,16-19)이나 열두 사도들에게 묶고 푸는 권한을 주신 것을(마태 18장18절) 기초로 말할 수 없게 된다.
실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가 언제 시작되었는가”의 문제를 무엇보다도 ‘신비’, 즉 ‘하느님의 구원계획, 혹은 구원역사’ 라는 전체 틀 안에서, 창조에서 종말에 이르는 전 역사 안에서 이해한다. 교회헌장 2항의 다음 표현은, 이러한 이해의 결과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을 불러 모으시기로 결정하셨다. 이 교회는 세상이 생길 때부터 이미 예표되었고(prefigurata),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와 구약에서 오묘하게 준비되었고(preparata), 마지막 시대에 세워져(instituita), 성령강림으로 드러났으며(manifestata), 세말에 영광스러이 완성될 것이다(consummabitur)”(LG 2항).
창조로부터 구약, 예수, 성령강림, 종말에 이르기까지 교회와 관련하여 각기 다른 동사들을 사용한 것은, 공의회가 교회 창립을 순전히 가시적, 제도적 차원에 가두어서 보지 않고, 전체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여 일어나는 연속적 사건으로 보되, 각 시기의 고유 의미를 차별화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구원역사 안에서 스펙트럼처럼 제시되고 있는 교회창립에 대한 전망이 그리스도에 의해 교회가 세워졌다라는 것을 전혀 약화시키지 않는다. 교회헌장 2항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창립(instituita)했다는 것을 명백히 선언한다.
그러나 교회의 창립은 12사도에게 묶고 푸는 권한을 줄 때나 베드로에게 수위권을 줄 때(내가 이 반석 위에 나의 교회를 세우리라) 가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가 ‘하느님 나라의 도래’ 를 선포할 때 이루어진다고 이해된다(교회헌장 5항). 그리스도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할 때, 그분의 말, 행적, 그분 자신의 현존, 곧 그분 자신의 인격 안에서 하느님 나라는 사람들에게 빛나기 시작했고, 이때 교회가 창립(fundatio) 되었던 것이다. 즉, 교계제도의 설립이나, 세례와 같은 성사적 측면을 말하기에 앞서, 구원의 전체 역사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론적 틀 안에서 교회의 창립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창립 자체가 교회의 신비이다(교회헌장 5항 참조).
한편, 교회사에서나 교회의 문헌들은 지역교회의 시작에 대해서도 fundatio 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를테면, 베드로와 바오로에 의한 로마교회의 fundatio, 파트리시오 성인에 의한 아일랜드 교회의 fundatio, 보니파시오에 대주교에 의한 독일교회의 fundatio, 그리고 요한 바오로2세가 103위 시성경축미사에서 한국천주교회를 시작한 이들에게 천명했던 한국교회의 창립자들(fondatori della Chiesa cattolica in corea) 등이다.
여기서 살펴보아야 할 것은, 지역교회에 대해서, 보편교회에 대해 사용하는 fundatio 라는 동일한 표현을 사용한다는 사실과, 지역교회의 시작을 주도했던 인물들에 대해 fundator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점이다. 첫번째 문제는 지역교회와 보편교회의 관계에 대한 이해로 접근할 수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특히 19세기 말 이후 가톨릭 신학에서 논쟁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지역교회와 보편교회의 문제를, 다음의 가르침을 제시함으로써 해결하려고 하였다: 지역교회가 (Ecclesia particularis) 는 보편교회의 모상(imago)을 따라 형성되었으며, 사실 하나이고 보편된 교회는(ecclesia una et sancta) 는 이 지역교회들 안에서, 그리고 이 지역교회들로부터 존재한다(in quibus [ecclesiis particularibus] et ex quibus una et unica Ecclesia catholica exsistit].
보편교회는 추상적 실재도, 지역교회들의 총합도 아니다. 또 지역교회는 보편교회의 일종의 행정구역과 같은 것도 아니다. 구체적 콘테스트 안에 실재하는 지역교회는 사실,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바로 그 교회의 모상(imago)을 따라 형성된, 그래서 그 교회가 구체적으로 현존하는 모습이다. 보편교회란 바로 이 지역교회 안에, 그리고 그 지역교회로 인해 역사 안에 현존한다. 이 때문에 둘 사이에는 서로가 서로 안에 존재하는 상호 내재성이 있다. 그렇다면 지역교회의 시작에 대해서, 보편교회의 시작을 말할 때 사용하는 fundatio 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전혀 무리가 없다. 또, 보편교회의 창립이 ‘하느님 나라’ 의 선포, ‘그리스도의 복음’ 의 선포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사실 지역교회의 창립도 같은 선상에서 우선적으로 찾아져야 한다.
두번째, 교회의 창립자가 그리스도 자신인 한((LG19 참조) 지역교회의 창립자(fundator) 또한 근본적으로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분의 교회” (Ecclesia mea. Mt16,16-19 참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각 지역에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시작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인물들에 대해 fundator 이라는 칭호를 붙이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구원과 관련된 사건들 안에서 인간 편에서의 참여를 어떻게 이해하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찾아질 수 있다. 역사 안에서 일어나는 하느님 구원사건은 인간 편에서의 기계적, 혹은 순전히 수동적 복종을 요청하며 일어나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구원성취에 있어서 예수의 인성의 역할이다. 겟세마니에서의 기도가 보여주는 것처럼 예수의 인성은 결코 신성의 단순한 ‘수동적 도구’ 가 아니다. 예수의 인성은 구원성취에 완전한 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말씀을 잉태하던 순간의 마리아도 마찬가지였고,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는 역할을 받은 성서의 저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이들은 하느님 말씀을 ‘받아쓰는’ 기계였던 것이 아니라, 온전한 자유를 가지고 자신들의 인간적 모든 능력을 충만하게 발휘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글로 옮겼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는 이들이 성서의 ‘참된 저자’ 라고 선언하는 것이다(계시헌장 11항).
어떤 지역에 그리스도의 교회가 ‘구체화’, 되고 ‘실현’ 되는데 있어서도, 창립자이신 그리스도는 인간의 능동적, 적극적 협력을 요청하신다. 이 사람들에게 창립자(fundator) 라는 칭호를 부여하는 것이 그리스도가 교회의 창립자(fundator) 라는 진리자체를 손상시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황들이나 교회사가들은 지역교회의 시작을 주도했던 인물들에게 fundator 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에 어떠한 주저함도 없다.
그러므로 라틴어나 서양언어들에서 그리스도에 대해서와 지역교회의 창립에 기여한 인물들에 대해서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는 용어 fundator 를 한국어로 옮길 때, 두 경우에 서로 다른 용어를 선택해야 할 국어학적 필요성이 있는 것인지, 또 그렇게 굳이 다르게 표현해야 하는 사목적 필요성이 있는 지는 그 정당성이 검토되어야 한다.<요약 끝>
<편집자 주: 본래 이 논고는 약 5페지 정도 되는 분량이었는데, 일반 독자들을 위하여 압축, 요약하느라고, 귀절이 어렵게 된 부분들이 없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최현순 박사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마치고, 동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를 받았고,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3년간 신학 연구를 마친 후, 신학석사를 받았으며, 로마 그레고리안대학교 학부에 편입하여, 졸업, 교의신학 학사, 동대학교 대학원에서 敎義神學, 특히, 1, 2 차 바티칸공의회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敎會論的인 면에서 교의신학을 전공하여 교의신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동대학원에서 2012년 5월에, 교의신학 박사 학위을 최고 우수 성적(Summa cum Laude)으로 받고 귀국하여, 현재, 서강대학교 종교학과와 신학대학원에서 교의신학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