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꼭 50년 전, 1963년 9월,
필자는 월급 150원을 받는 일등병으로, 육군본부 본부사령실 서무계로 근무하고 있었다. 종종 전국 예하 부대에서 업무 연락차 육본을 방문한 병사들 중에, 서부전선 1사단, 전진부대에서 왔다고 하면, 우리 육본 사병들은 그들을 다시 한번 더 쳐다보며, 무척 부러워하였다. 당시 1사단은 군기가 가장 엄하고, 군대생활답다는 소문이 있어서, 행정 사무원처럼, 후방에 근무하는 우리 젊은 사병들에겐 전근 선망의 대상이 되는 부대였다.
100년 박해 중에 천주교 신자들의 피로 물든 9월, 이번 殉敎者 聖月에, 며칠 전 필자는 처음으로 임진강을 건너가서, 최전방 전진부대를 방문, 휴전선의 철조망을 밤낮으로 지키고 있는 병사들을 만나보는 영광의 기회가 있었다. TV 뉴스 때나 가끔씩 보던 저 철조망을 따라, 불안과 긴장의 산비탈을 오르내리는 부대원 병사들의 거처를 방문하며, 오전 두차례와 오후 한차례, 軍과 信仰을 이야기하다보니, 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70이 넘은 나이도 잊은 채, 어느새 필자역시 최전방에 근무하는 20대 청년 兵士라도 된듯하였다.
임진강을 건너 최전방 DMZ를 지키는 勇士들에게 무슨 말을 하랴? 우선 고맙고, 장하다는 말이 먼저 나온다. 이 장병들이 여기 없다면, 우리가 서울서 신나게 차를 몰고 다니며, 편히 앉아서 커피를 마실 수 있으랴?! 그런데, 포동포동하며 부옇게 살찐 병사들의 얼굴과 싱싱한 피부색이며, 모두가 신수가 좋아서 기백이 넘치는 一當百의 청년 용사들이다. 알아보니, 매일 식사 메뉴가 아주 좋고, 또 음식도 매일 고기, 생선, 달걀, 우유, 등을 양껏 먹고도 많이 남을 정도로 풍요로워서, 입대하기 전 집에서보다 더 잘 먹고 있다고 한다. 50년 전 우리는 군복무 기간에 배고푼 적이 많았었는데, 우리나라가 벌써 이처럼 富國强兵의 大國이 된 현장을 체험하였다.
육군 제1사단은 대한민국 정부수립보다 1년 앞서서, 1947년에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창설된 사단이다. 아니, 1사단의 군사력이 있었기에, 대한민국 정부수립이 가능하였다. 옛날에는 늘 무력을 지닌 장수가 건국의 始祖였으나, 현대의 민주국가는 先行하는 군사력이 뒷받침해야 한다. 입만 가지고 떠드는, 특히, 심지어, 군복무도 하지 않고 기피하던 이들까지 나타나서, 萬古의 애국자라도 된양, 야단법석을 하는, 소위 政治家然 하는 기회주의자들의 무대에 출연하는 이들은 建國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며,亡國이나 앞당기기 쉽다.
정부수립 후 겨우 한 살이 되어, 일어서지도 못하고, 무기도 없이 빈 손으로, 알몸으로 기어다니던 갖난 아기같은 우리 軍은, 1950년 6.25 동난으로, 북한 공산당 괴뢰군이 3일만에 서울을 함락, 1주일만에 수원을 점령, 20일만에 대전 점령, 등 파죽지세로 대구와 부산 지역까지 후퇴를 거듭하였었으나,피를 뿌리며, 목숨을 바치면서 살아남은 전진부대 1사단 병사들이 전면에서 싸우던 낙동강 다부동 전투를 승리의 피로 짙게 물들여가던, 전진부대 생존한 1사단 장병들이 부르던 노래는 지금도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당시 초등학교 4학년생이었던 우리 어린이들이 골목마다 마을에서 부르던 애창곡이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 우리는 전진한다 !
원한이여,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화랑 담배 연기 속에 잠자는 전우야!”
前進 밖에 모르는 1사단 전진부대는, 鮮血로 붉게 물들어 흘러가는 낙동강을 뒤로하고, 대구, 왜관 지역에서 서울까지, 도주하며 도망하는 북한 공산군을 추격하며, 용감한 해병대 용사들을 비롯한 불타는 애국용사들과 함께, 영등포, 관악산, 삼각지, 한남동, 남산, 세종로, 등 서울중심부로 진격하며, 수도 서울을 재탈환하여 수복한 주력부대였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首都 서울 收復 이었던가? 서울을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시골의 우리 어린이들도 뛸 듯이 기뻐하던 [서울 수복]이었다. 숨 돌리며앉아서 쉴 사이도 없이, 전진부대는 목이 터져라고 노래를 부르며 전진하였다.
“터지는 폭탄을 무릅쓰고, 앞으로, 앞으로! 한강수야 잘 있느냐? 우리는 돌아왔다!
들국화도 송이 송이 피어나 반기어 주던, 노들강변 언덕 위에 쓰러진 전우야!”
전진부대 1사단은 성난 파도처럼 北進을 계속하여, 38선을 넘으며 진격을 거듭하고, 마침내 [평양을 탈환]하고, 나아가, 앞록강에 이르러, [압록강 물과 백두산 天池의 물]을 떠서, 당시 이승만 대통령에게 갖다 바쳤다.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38선아 잘 있거라! 우리는 북진한다!
흙에 묻힌 철갑모를 손으로 어루만지니, 떠오른다, 네 얼굴이, 꽃같이 별같이 !,,,.”
원시시대의 人海戰術 밖에 모르던 중공군의 대거 남침 100만 대군만 아니었다면, 그 때 남북한은 통일이 되었고, 지금은 전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된 대한민국이 통일 대한민국으로서 세계에서 5위 내외의 경제 대국이 되어, 북한 동포들도 오늘처럼 저렇게 굶주리며 고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당시 중공군과 싸우다가 휴가 나온 젊은이들이 다시 귀대하여 며칠 후 중공군과 싸우다가 戰死하여 火葬한, 한 줌의 재가 되어 고향 마을에 돌아오면, 가족들뿐 아니라 모두가 이 젊은 용사들의 주검 앞에서, 1951년 초등학교 4학년생 우리들도, 假裝行列 때도, 목이 터져라고 외치며, 한맺힌 목소리로 부르던 노래가 있었다.
“무찌르자, 오랑캐. 몇 백만이냐? 大韓 男兒 가는 길엔 초개로구나 ! <*草芥는 풀끝의 이슬이다>
나아가자, 나아가 ! 승리의 길로 ! 나아가자, 나아가 ! 승리의 길로 !”
국방의 의무는 神聖하다고 흔히 말한다. [神이 내려 준, 거룩한 본분]이란 뜻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첫 아들을 낳으면, 聖殿에 안고 가서 하느님께 바쳤다. 우리 아들이 아니고, 우리 민족을 지키는 나라의 아들이고,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여겼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거룩한 기회가 군복무 기간이다. 우리 일생에 이러한 행운의 거룩한 기회가 언제 또 있으랴? 나이가 젊다면,이 늙은 이도 군에 다시 입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누구나 사람이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죽음이다. 자신이 죽는 것 못지 않게 남을 죽이는 것도 가장 힘든 일이다. 십자가에 처형되신 예수님의 죽음은, 예수님이 선택한 인류 구원의 거룩한 방법이었다. 최 전방에서 적군이 겨누고 있는 총구 앞을 거닐면서, 휴전선의 철조망에 목숨을 걸어놓고, 오늘밤도 내일 낮도,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주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거룩한 죽음의 산 비탈길을 오르내리는, 聖戰의 우리 聖人 勇士들은 십자가의 죽음보다 한가지 더 적군을 죽여야 하던, 다윗 소년이나 모세와 같이, 天命을 실천하는 殉國勇士들이며 殉敎聖者들이다.! 주님의 天使들이여 우리 이 용사들과 항상함께하여 주소서.!
침략과 약탈을 위한 것이 아니라, 침략하는 약탈자들을 막고 물리치기 위하여, 내 부모 형제,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침략자들을 방어하기 위하여, 피를 뿌리며 목숨을 바치는 전쟁이 우리에게는 聖戰이다. 聖戰의 용사들은 모두가 殉國烈士들이며, 殉敎聖者들이다. 우리가 한 평생 살아가는 동안, 이런 聖戰의 勇士로 살 수 있는 기회를 받은 것은 神이 주시는 행운의 특은이다. 감사를 드리자. 후방의 우리 국민 모두는 절대다수가 자유 대한민국의 反共愛國 국민들이며, 온 국민이 국군 장병들을 하루도 잊지 않고 감사하며, 존경하고, 위하는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음을 알고, 믿고, 기뻐해야 하겠다.
“대한민국 만세 ! 전진부대, 1사단 만세 ! 만만세 ! 다시 한번 더 만세!” 를 부르고 돌아와서, 하루속히 남북이 전쟁을 피하고, 평화통일을 이루도록, 천진암 성지의 [세계평화의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바쳤다. Msgr. By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