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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암 강학

  • 천진암 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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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암 강학
  1. 천진암 강학


曠菴 李檗과 茶山 丁若鏞의『中庸』理解(동영상, 사진화보)






 

2016. 9. 3. (土)

天眞菴 講學 資料 (제1회)
曠菴 李檗 茶山 丁若鏞中庸理解
강사 :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이 향 만 교수
기도하는 사람의 세상은 평화롭고
일 하 는 사람의 세상은 새 롭 고
사랑하는 사람의 세상은 아름답다.
이향만 HP: 010-3220-6230


『중용』이란 무엇인가?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만남은 한 당대에 도교와 불교의 만남에 버금가는 철학적 사유를 기반으로 하여 이루어졌다. 철학적인 도교의 무위자연의 사유는 불교토착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마침내 독창적인 중국 선불교의 모습을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이와 유사하게 예수회 선교사에 의하여 비롯된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보유론적 만남은 이 땅에서 종교 윤리적 삶에 지대한 갈등과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비롯되었다. 무엇보다『중용』은 철학적 사유의 만남 중심에서 형이상학과 인식론과 가치론에서 상이한 두 사유와 종교적 삶에 가교를 놓게 된다. 광암은『중용』가운데서 유신론적인 종교적 사유의 근거를 발견하고 유학자로서 천주교에 귀의하며 토착 신학적 토대를 놓았으며, 다산은 광암의 영향으로『중용』으로부터 경학사상을 보편적인 철학적 사유와 종교적 심성의 단서를 발견한다.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만남을 철학적으로 회고하기 위해 『중용』을 다루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대략 B.C. 2-3세기의 저작으로 추정되는 대학과 중용은 예기에 속한 편명인데 주자에 의해 논어 맹자와 더불어 사서로 신유학의 경서로 자리잡기에 이른다. 예기는 곽점 초간에 의하면 B.C. 4세기 까지 올라 갈수 있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문헌학적으로 볼 때 대학과 중용은 후대 삽입된 것이며 여러 사람의 저작으로 보인다. 내용과 논의 구성방식은 도교와의 교류내지는 영향을 엿보게 하며 역경의 十翼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사마천이 중용을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지었다고 하나 이는 중용이 유가의 전통을 잇고 있다는 상징적인 표현일 수가 있다.
중용과 짝을 이루는 대학은 사회적 질서가 어떻게 개인의 수양으로부터 가족을 거쳐 점진적으로 발전해 나아갈 수가 있는 지를 밝히고 있다. 즉, 사회적 유대를 혈연관계에서 도출하여 가족 안에서 획득된 덕성이 어떻게 국가와 천하로 확장되어 갈 있는가를 밝히고 있다. 이 과정에서 修身은 正心에 의존하고 정심은 성의에 의존한다. 誠意(성은 담화를 통한 인격의 완성)는 致知에 의존하고 치지는 격물(사물의 본질인식)에 의존한다. 이러한 사유는 공자의 ‘忠恕’사상에 기반하고 있으며 모든 가치를 지식자체의 가치로부터 도출하는 과학적(인과적) 인식체계를 명백히 하고 있다.
중용의 구성은 한(漢)나라 때 공부(孔駙;공자의 9대손)가 편찬한「孔叢子」에 의하면 48편으로 되어있다고 하였고, 주자의「中庸章句」에는 33장으로 되어있다. 『漢書』「藝文志」에 “中庸說 二篇”이라고 하나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이 언급으로부터『도덕경』이 도경과 덕경으로 이루어진 것과 같이 중용경과 성경으로 나눌 수 있다. 일반적인 구분은: 1장은 자사의 글로 중용 전체의 요지를 설명하고, 2∼11장은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중용의 도를 이루는, 즉 致中和하는 방법을 논함으로써 1장의 뜻을 완결시키고, 12∼20장은 공자의 말과『시경』을 인용하여 中庸之道의 원리와 작용을 밝히며, 중용과 중화의 관계를 체와 용으로 설명하고 있다. 21∼26장은 『중용』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誠을 설명하여 “성은 하늘의 도요, 성 되려는 것은 사람의 도”라 하고, 수양을 통하여 성을 이루면 天性을 터득하여 행할 수 있다고 하였으며, 27∼33장은 至誠을 체득한 성인의 도·덕·교화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중용에 대하여 이미 공자가 언급한 바가 있다: 中庸之爲德也 其至矣乎 民鮮久矣雍也」
중용1장은 도덕경 1장과 같인 총론적인 성격이 강하며 논의 전개 방식도 다른 장과는 달리 시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도덕경과의 대조는 논의 구성의 유사점을 찾는데 도움을 준다.
天命之謂性;率性之謂道;修道之謂敎
명을 받드는 것을 일컬어 성이라고한다; 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고 한다; 도를 닦는 것을 교라고 한다.
道也者,不可須臾離也;可離,非道也
도라는 것은 모름지기 잠시도 [사람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떨어질 수 있다면 도가 아니다.
是故君子戒愼乎其所不睹,恐懼乎其所不聞
이런 까닭으로 군자는 보이지 않아도 경계하고 삼가며 들리지 않아도 두려워하고 조심한다.
莫見乎隱,莫顯乎微。故君子愼其獨也。
감추어진 것보다도 더 드러나는 것은 없고 작은 것보다 더 뚜렷한 것은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음에도 삼간다.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發而皆中節,謂之和
희노애락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을 중이라고 하고 나타나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라고 한다.
中也者,天下之大本也。和也者,天下之達道也。
중이라는 것은 천하의 큰 뿌리요, 화라는 것은 천하에 도가 이루어짐이다.
致中和,天地位焉,萬物育焉。
중화를 극진히 하면 천지가 제자리에 서고 만물이 자라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맹자의 인성론이 형이상학적으로 발전한 내용을 보게 된다. 도는 단순히 사회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본성과도 일치를 이루어야한다. 대학의 격물론이 중용에서 내재적으로 발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용의 도는 창조적 질서의 수행이자 세계 창조의 참여이다.
誠者,天之道也。誠之者,人之道也。
성실이라는 것은 하늘의 도이고 성실한 것은 사람의 도이다.
誠者,不勉而中不思而得:從容中道,聖人也。誠之者,擇善而固執之者也。(二十章)
성실이라는 것이 노력하지 않아도 그 가운데 머물고 생각하지 않아도 갖게되어 자연히 도에 맞으니 바로 성인이다. 성실하게 하는 것은 착한 일을 골라 굳게 지키는 것이다.
誠者自成也,而道自道也。
성실이라는 것은 스스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도는 스스로 나아간다.
誠者,物之終始。不誠無物
성실은 사물의 시작이자 마침이다. 불성실이면 사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是故君子誠之爲貴。
이런 까닭으로 군자는 성실하게 하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誠者,非自成己而已也。所以成物也
성실이라는 것은 자신만을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물도 완성시킨다.
成己仁也。成物知也。性之德也,合外內之道也。故時措之宜也。(二十五章)
자기를 이루는 것은 인이며, 사물을 이루는 것은 지혜이다. 이것이 본성의 덕이며 내외를 합하는 도이다. 그러므로 시의에 맞음이다.
여기서 중국음운에서 나타나는 유비적 사유를 살필 필요가 있다.
生 낳다/자라다 性 본성 (물의 생성경향)
成 전체를 이루다 誠 성실 (인격의 전체성)
誠을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게 하는 것은 情 況(사실)
情 感(가치)
우주의 창조성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인간의 창조적 삶과는 어떤 상관성을 갖고 있는가?

Hope Mason, John에 의한 창조성의 두 유형
1) 신은 세계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다: 신 플라톤적이며 도덕적 선과 조화, 영성
2) 프로메테우스적: 창조는 독창적이지만 비도덕적이고 갈등의 구조를 내재
이 두가지의 창조성은 무로부터 창조creatio ex nihilo라는 구분된 의식에서 비롯하고 있다. 중용에서 성인의 이미지는 역동적으로 인간 공동체를 조화시킴으로써 우주를 고무하는 탁월한 의사 소통자聖人이다. 중용에서 발견하는 협동적 창조성과 상관적 우주론은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창조하는 creatio ex situ를 의미한다. 한 인간은 그의 독특한 개별성에서 그리고 그가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연관성 안에서 하나를 이룬다. 다른 한편 그는 각각의 관계 안에서 고유한 개별성, persona를 발현 시킨다. 이러한 창조성은 물리적 창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場의 관계성 안에서 나타나는 창조를 의미하는 것이다. 도덕경에 관계적 창조를 잘 설명해주는 구절이 있다.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四十二章)
이 창조과정에서는 개별적 창조는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는 사물을 새로운 시각에 발견하고 사람들과 부단히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며 인격을 새롭게 구축해 나아간다. 우리가 이름을 짓는 것은 새로운 관계를 규정하는 것이고 관계의 의미를 살피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은 의미의 원천이자 창조의 동반자이다.
唯天下至誠爲能盡其性
오로지 천하의 지극한 성실이라야 그 본성을 다할 수 있다.
能盡其性,則能盡人之性。能盡人之性,則能盡物之性。能盡物之性,則可以贊天地之化育。
능히 본성을 다하면 다른 사람의 본성을 다할 수 있고, 능히 다른 사람의 본성을 다하면 능히 사물의 본성을 다할 수 있고, 능히 사물의 본성을 다하면 천지의 화륙을 도울 수 있다.
可以贊天地之化育,則可以與天地參矣
천지의 화륙을 도울 수 있으면 천지와 위격을 나눌 만하다.
第十六章
子曰,「鬼神之爲德其盛矣乎。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귀신이 덕을 베품이 참으로 크다.
視之而弗見;聽之而弗聞;體物而不可遺
보아도 보이지 않고 ; 들어도 들리지 않고; 물의 근거가 되어 떨어질 수 없다.
使天下之人,齊明盛服,以承祭祀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바르게하고 의관을 갖추어 제사를 드리게하니
洋洋乎,如在其上,如在其左右。
충만함이 위에 계신듯하고, 좌우에 계신 듯 하니
詩曰,『神之格思,不可度思,矧可射思?』
시경에 이르기를 신이 언제 강림할지 헤아릴 수 없는데 하물며 싫어하겠는가?
夫微之顯。誠之不可揜,如此夫。
무릇 미묘한 것이 나타나는 것이다. 정성이란 가려서 덮을 수 없는 것이 이와 같다.
다산은 1장의 莫見乎隱,16장의 夫微之顯, 33장의 知微之顯이 하나로 일관되게 首尾를 이루고 있다고 보았다.
詩曰,「衣錦尙絅」惡其文之著也。
시경에 이르기를 “비단옷 위에 삼베옷을 입었도다”이는 비단의 번쩍거림이 드러남을 꺼림이다.
故君子之道 闇然而日章 小人之道,的然而日亡
그러므로 군자의 도는 보이지 않는 것 같으나 날로 빛나고 소인의 도는 반짝이다가 바로 사라진다.
君子之道,淡而不厭、簡而文、溫而理。知遠之近,知風之自,知微之顯。可與入德矣。
군자의 도는 담담하면서도 싫지 않으며, 간결하면서도 빛이 있고, 온후하면서 조리가 있고, 먼데 것은 가까운데서 시작함을 알고, 바람이 오는 곳을 알며, 은미한 것이 드러남을 알면 가히 덕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中이란 성인의 지극한 공부이다. 未發시에 공부해야한다. 天命에 證驗한 후에 中을 얻을 수 있다. 愼獨 다음에 致中에 이를 수 있다.
庸이란 恒常, 經常, 平常을 의미한다. 평상은 南泉에게서 유래한다. 平常心是道
中은 和이며, 庸은 떳떳함이다.
第十二章
君子之道,費而隱。
費: 천하에 어느 것으로도 능히 실을 수 없이 큰 것
隱: 천하의 어느 것으로도 능히 쪼갤 수 없이 작은 것
中庸은 人道, 費隱은 天道
귀신: 天神, 地示, 人鬼
천신: 昊天 上帝로 상제를 보좌하는 신하; 地示: 社稷이나 궁극적으로 人鬼
天道는 至誠으로 만물의 軆가 되어 造化發育에 性命을 바르게 한다.
종교적 인식:
君子之道,造端乎夫婦;及其至也,乎天地。
군자의 도는 부부의 도리에서 시작된다: 그 지극한 것에 이르러 천지를 살펴야 한다.
다산에게 유교는 천명의 종교이다. 여기서 상제는 계시적이고 세계외적인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상제의 존재성이 인간의 생명과 삶 속에서 도덕적으로 관계하는 내재적 초월성으로 나타나게 된다.
中 庸
中庸章句序
中庸何爲而作也? 子思子憂道學之失其傳而作也. 蓋自上古聖神繼天立極, 而道統之傳有自來矣.
중용을 지은 까닭은 무엇인가? 자사자가 도학이 그 전통을 잃어 감을 염려하여 지은 것이다. 대개 옛 성왕이 천명을 받아 기준을 세워 도학의 전통이 처음 시작된 것이다.
其見於經, 則 「允執厥中」 者, 堯之所以授舜也;「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者, 舜之所以授禹也. 堯之一言, 至矣, 盡矣! 而舜復益之以三言者, 則所以明夫堯之一言, 必如是 而後可庶幾也.
그것이 경서에 나타나기로는 즉 「그 중을 올바로 잡아라」라고 한 것은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전한 말이다;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미묘하니 오직 정일하여 그 중을 올바로 잡아라」하고 말한 것은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전한 말이다. 요임금의 한 마디 말씀은 지극하고 극진하다! 순임금이 다시 세 마디 말씀을 더한 것은 요임금의 말씀을 밝히려는 것이니, 반드시 이같이 한 이후에야 거의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蓋嘗論之: 心之虛靈知覺, 一而已矣, 而以爲有人心道心之異者, 則以其或生於形氣之私, 或原於性命之正, 而所以爲知覺者不同, 是以或危殆而不安, 或微妙而難見耳.
대개 이것을 논해보면, 마음의 허령한 지각은 하나일 뿐인데 인심과 도심의 다름이 있음은 그것이 혹 형기의 사사로움에서 생겨나거나 혹 본래 성명의 바름에서 비롯하기에 지각이 같지 않은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혹 위태로워서 불안하거나 혹 미묘하여 알아보기 어려울 뿐이다.
然人莫不有是形, 故雖上智不能無人心, 亦莫不有是性, 故雖下愚不能無道心. 二者雜於方寸之間, 而不知所以治之, 則危者愈危, 微者愈微, 而天理之公, 卒無以勝夫人欲之私矣.
그러나 사람이 형기를 갖지 않을 수 없으니 비록 지혜로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인심이 없을 수 없고 역시 사람이 성품을 갖지 않을 수 없으니 비록 어리석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도심이 없을 수 없다. 두 가지가 마음속에 섞여 있으니 그것을 다스리는 바를 알지 못하면 위험한 것은 더욱 위험하게 되고 은미한 것은 더욱 은미하게 되니 천리의 공평함이 마침내 인욕의 사사로움을 이겨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精則察夫二者之間而不雜也, 一則守其本心之正而不離也. 從事於斯, 無少閒斷, 必使道心常爲一身之主, 而人心每聽命焉, 則危者安․微者著, 而動靜云爲自無過不及之差矣.
정이란 둘 사이를 잘 살펴 섞이지 않게 하는 것이고, 일이란 본심의 바름을 지켜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종사하여 조금도 틈이 없게 되면 반드시 도심이 항상 한 몸의 주인이 되어서 인심이 매번 명을 들으니 위험한 것은 안정되고 은미한 것은 뚜렷하게 되어 모든 행동(움직임과 말함)이 저절로 과불급의 차이가 없게 되는 것이다.
夫堯․舜․禹, 天下之大聖也. 以天下相傳, 天下之大事也. 以天下之大聖, 行天下之大事, 而其授受之際, 丁寧告戒, 不過如此. 則天下之理, 豈有以加於此哉? 自是以來, 聖聖相承: 若成湯․文․武之爲君, 皐陶․伊․傅․周․召之爲臣, 旣皆以此而接夫道統之傳,
무릇 요·순·우 임금은 천하의 대성인이다. 천하를 서로 전하여 준 것은 천하의 큰일이다. 천하의 대성인으로 천하의 큰일을 하는데 있어 정녕 경계한 것이 이 말에 지나지 않으니 천하의 이치가 어찌 여기에 더할 것이 있겠는가? 이때부터 성인이 서로 계승하여 탕왕·문왕·무왕은 군주가 되고 고요·이윤·부열·주공·소공이 신하됨은 모두 이로부터 무릇 도통의 전통을 이은 것이다.
若吾夫子, 則雖不得其位, 而所以繼往聖․開來學, 其功反有賢於堯舜者. 然當是時, 見而知之者, 惟顔氏․曾氏之傳, 得其宗. 及曾氏之再傳, 而復得夫子之孫子思, 則去聖遠而異端起矣.
우리 공부자 같은 분은 비록 그 지위를 얻지 못하였어도 지나간 성인을 계승하여 다가올 학문을 열었으니, 그 공이 오히려 요순보다 지혜로움이 있다. 그러나 그 당시 가까이 모시고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오로지 안자와 증자[로 그분들]의 전함만이 그 종지를 얻었다. 증자가 다시 전함에 이르러 공부자의 손자 자사를 얻었으나 성인 가신지 오래되어 이단이 일어나고 있었다.
子思懼夫愈久而愈失其眞也, 於是推本堯舜以來相傳之意, 質以平日所聞父師之言, 更互演繹, 作爲此書, 以詔後之學者. 蓋其憂之也深, 故其言之也切; 其慮之也遠, 故其說之也詳.
자사께서는 무릇 더욱 오래될수록 그 진실을 잃음을 두려워하니 이에 요순이래 서로 전하여 준 뜻에 근본을 두고 평소에 들은 스승의 말씀을 가지고 질정하여 다시 연역하여 이 책을 지어 후학에게 알리게 되었다. 대개 그 우려함이 깊어서 그 말씀이 간절하고, 그 사려함이 원대하여 그 설명이 상세하다.
其曰 「天命率性」, 則道心之謂也; 其曰 「擇善固執」, 則精一之謂也; 其曰 「君子時中」, 則執中之謂也. 世之相後, 千有餘年, 而其言之不異, 如合符節. 歷選前聖之書, 所以提挈綱維, 開示蘊奧, 未有若是之明且盡者也.
책에서 말하는 ‘천명’과 ‘솔성’은 도심을 일컫는 것이고, ‘택선’과 ‘고집’은 정일을 일컫는 것이고, ‘군자시중’은 집중을 일컫는 것이다. 세상이 바뀐 지 천여 년이 지나도 이 말씀은 틀림이 없어 부절을 합한 것 같다. 지나간 성인의 글을 선택하여 강령을 가려 뽑아 심오한 이치를 열어 보인 것이 이같이 분명하고 극진한 것은 일찍이 없었다.
自是而又再傳, 以得孟氏, 爲能推明是書, 以承先聖之統, 及其沒而遂失其傳焉. 則吾道之所寄, 不越乎言語文字之閒, 而異端之說日新月盛, 以至於老佛之徒出, 則彌近理而大亂眞矣.
이로부터 다시 전하여 진 것이 맹자에 이르러 이 책을 능히 미루어 밝혀 지나간 성인의 전통을 이었으나 그가 세상을 떠나자 그 전통을 잃기에 이르렀다. 우리의 도가 기탁하는 바가 언어문자의 사이를 넘어서지 않으니 이단의 설이 날로 새롭게 일어나 노자와 부처의 무리가 나타나기에 이르렀으니 두루 이치에 가까우나 진리를 크게 어지럽혔다.
然而尙幸此書之不泯, 故程夫子兄弟者出, 得有所考, 以續夫千載不傳之緖; 得有所據, 以斥夫二家似是之非. 蓋子思之功於是爲大, 而微程夫子, 則亦莫能因其語而得其心也.
그런데 오히려 다행스럽게 이 책이 없어지지 않았는데 정자 형제가 나와 상고할 바를 얻어서 천년동안 전해오지 못한 단서를 이을 수가 있었다. 근거할 바를 얻어 무릇 노불의 옳은 것 같은 그른 것을 물리쳤다. 대개 자사의 공이 여기에서 위대하지만 정자가 아니었더라면 그 말씀을 가지고 그 마음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惜乎! 其所以爲說者不傳, 而凡石氏之所輯錄, 僅出於其門人之所記, 是以大義雖明, 而微言未析. 至其門人所自爲說, 則雖頗詳盡而多所發明, 然倍(背)其師說而淫於老佛者, 亦有之矣.
애석하도다! 그들이 설명한 바가 전하여지지 않고 겨우 석씨((石墩)가 편집하여 기록한 것만이 겨우 문인의 기록에 나타날 뿐이다. 그러므로 대의는 비록 밝으나 은미한 말씀은 분석되지 않았다. 문인들이 스스로 설명한 바에 이르러 비록 자못 상세함이 극진하고 밝힌 바가 많으나 스승의 학설에 위배되고 노불에 빠진 바가 있었다.
熹自蚤(早)歲卽嘗受讀而竊疑之, 沈潛反復, 蓋亦有年, 一旦恍然似有以得其要領者, 然後乃敢會衆說而折其中, 旣爲定著<章句>一篇, 以鬪後之君子. 而一二同志復取石氏書, 刪其繁亂, 名以<輯略>, 且記所嘗論辯取舍之意, 別爲<或問>, 以附其後.
나는 어린 나이에 일찍이 이 책을 받아 읽어보고 감히 의문이 가서 침잠 반복하기를 몇 년이 지났는데 어느 날 홀연히 그 요령을 얻은 것 같았다. 그 후 감히 여러 설을 모아 절충하여 <중용장구> 한편을 완성하고 후세 군자를 기다렸다. 한 둘 뜻이 같은 사람과 석씨의 책을 다시 모아 그 번잡한 것을 정리하여 <중용집략>이라 이름 지었고, 또 일찍이 논변하는데 취하고 버린 뜻을 기록하여 별도로 <중용혹문>이라고 하여 그 뒤에 붙였다.
然後此書之旨, 支分節解, 脈絡貫通, 詳略相因, 巨細畢擧, 而凡諸說之同異得失, 亦得以曲暢旁通, 而各極其趣. 雖於道統之傳, 不敢妄議, 然初學之士, 或有取焉, 則亦庶乎行遠升高之一助云爾.
그런 뒤에야 이 책의 종지가 분절이 나눠지고, 맥락이 통하고, 상세함과 간략한 것이 서로 연관이 되어 크고 작은 것이 마침내 드러나게 되었으니 무릇 모든 설의 차이와 득실이 역시 곡창방통을 얻어 각기 그 취지를 다하게 되었다. 비록 도통을 전하는데 있어서 감히 함부로 의논할 수 없으나 초학자가 혹시 취할 바가 있으면 역시 바라건데 멀리가고 높은데 오르는 데에 있어서 한 가지 도움이 될 것이다.
   淳熙己酉春三月戊申, 新安 朱熹 序
(남송, 효종 16년, 1189년, 60세)
前 文
中者, 不偏不倚, 無過不及之名, 庸平常也. 子程子曰, 不偏之謂中, 不易之謂庸. 中者, 天下之正道, 庸者 天下之定理. 此篇乃孔門傳授心法. 子思恐其久而差也, 故筆之於書, 以授孟子. 其書 始言一理, 中散爲萬事, 末復合爲一理. 放之卽彌六合, 卷之卽退藏於密, 其味無窮, 皆實學也. 善讀者 玩索而有得焉 卽終身用之 有不能盡者矣.
‘중’이란 지우치거나 기울지 않아서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함이 없음을 말한다. ‘용’이란 평상이다. 자정자는 말하기를 편벽되지 않는 것이 중이요 바뀌지 않는 것이 용이라 하였다. ‘중’이란 천하의 올바른 도요, ‘용’이란 천하에 정해진 이치다. 이 책은 공자의 문도가 전하여준 심법이다. 자사는 이것이 오래되면 착오가 생길 것을 두려워하여 책으로 적어 맹자에게 전하였다. 이 책은 처음에 하나의 이치를 말하고 중간에 흩어져 만사가 되었다가 마지막에 다시 합쳐져 하나의 이치가 되었다. 이것을 펼치면 육합에 이르고, 이것을 말면 물러나 깊은 곳에 감추어져 그 의미가 무궁하니 모두 실학이다. 잘 읽는 사람은 잘 살피고 사색하여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니 종신토록 사용해도 다하지 못함이 있을 것이다.
中庸講義補 / 中庸自箴
[中庸講義補序]
乾隆癸卯春。余以經義升太學。厥明年甲辰夏。余年二十三
內降中庸疑問七十條。令太學生條對。時亡友曠菴李檗在水橋讀書。時年三十一就問其所以對。曠菴樂之爲談討。相與草創。歸而視之。間有理活而詞蹙者。以意刪潤。遂徹睿覽。後數日。都承旨金尙集謂承旨洪仁浩曰丁鏞爲誰。其文學何如。今日筵諭曰泮儒條對。率皆荒蕪。獨鏞所對特異。其必有識之士也。
건륭 계묘년 봄. 나는 경의시로 태학에 올라갔다。그 다음해 갑진년 여름에 {내가 23세였다} 임금께서 조서를 내려 중용의 의문이 가는 70조목을 태학생들로 하여금 답변하게 하셨다. 그때 지금은 죽은 친구인 광암 이벽이 수표교에서 독서하고 있었다. {그때 나이 31살이었다} 찾아가서 대답할 바를 그에게 물으니 광암은 즐겁게 담론하며 함께 초고를 만들었다. 돌아와서 살펴보니 간간이 이치에 맞지 않고 말이 어긋난 부분이 있었다. 생각대로 문장을 다듬었다. 명철하신 임금께서 보신다음 며칠 후에 도승지 김상집이 승지 홍인호에게 말했다. “정용은 어떤 사람인가? 그의 학문이 어떤가? 오늘 경연석상에서 성상께서 말씀하시기를, ‘성균관 서생의 조목에 대한 답변이 모두 거친데 유독 용은 답변이 특이하니 그는 반드시 식견을 갖춘 선비일 것이다.’ 하셨다.”
蓋以東儒理發氣發之論。余所對有契於聖心。非有他也。越三年丙午夏。曠菴沒。越八年癸丑秋。余在明禮坊脫藁。已覺所對不能無傅會牽強。違倍本旨。嘉慶辛酉冬。余謫康津。越十有四年甲戌夏。臺啓始停。而赦書中滯。時余在茶山。著中庸自箴二卷。始取甲辰舊稿。再加刪潤。其或有違於本旨者追改之。其或聖問之所不及而義有當辨者。按節增補。共六卷。
대개 우리나라의 선비들이 이발 기발을 논하는데 나는 대답에 성상의 마음에 부합하는바가 있어서 그렇지 다른 것이 아니다. 3년이 지난 병오년 여름에 광암이 죽었고 8년이 지난 계축년 가을 나는 명례방에서 탈고하였다. 그러나 이미 대답한 것이 경강부회로 본지에 어긋난 바가 없을 수 없음을 이미 깨닫고 있었다. 가경 신유년 겨울 내가 강진으로 귀향가서 14년이 지난 갑술년 여름에 대계로 형이 정지되었는데 사면서가 정체되어 있었다. 그때 나는 다산에서 중용자잠 2권을 저술하고 갑진년에 쓴 옛 원고를 다시 손질하였다. 그 과정에서 혹시 본지에 어긋나는 것은 개정하였고 혹시 성상께서 질문하지 않았으나 그 의리가 마땅히 답변해야 할 것은 그 절목에 따라 6권으로 증보하였다.
今雲遊已邈。玉音永閟。旣質問無處。而上計曠菴討論之歲。亦已三十年矣。使曠菴而尙存。其進德博學。豈余比哉。合觀新舊。其必犂然。一存一亡。何嗟及矣。不禁撫卷而流涕也。時甲戌七月之晦。書于茶山
이제 성상께서 돌아가지 오래되었다. 성상의 음성이 멎은 지 오래되었다. 이미 물을 데가 없다. 거슬러 헤아려보니 광암과 토론한지가 벌써 30년이 되었다. 광암이 살아있다면 그 진덕과 박학을 어찌 내가 비교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내 생각과 예전의 내 생각을 합하여 보면 반드시 그와 뜻이 맞았을 텐데 한사람은 살아있고 다른 한사람은 가고 없으니 어찌하랴! 이 책을 어루만지니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구나. 때는 갑술년 7월 그믐 다산에서 쓰다.
[中庸自箴序]
漢書藝文志。中庸說二篇。〇劉宋散騎常侍戴顒。撰中庸傳二卷。〇隋書經籍志。中庸講疏一卷。梁武帝撰。王崇簡云梁武帝又撰私記制旨中庸義五卷。〇唐陸德明釋文云中庸。孔子之孫子思作。以昭明祖德。〇王崇簡云中庸之單行久矣。宋儒以爲表章始於二程。非也。
한서예문지에『중용설』이 2편이라고 하였다. 남조의 송나라 산기상시인 대옹이 『중용전』 2권을 지었다. 수서경적지에『중용강소』1권은 양무제가 지었다고 하였다. [청나라] 왕숭간은 말하기를, “양무제가 또한『사기』를 지어『중용의』5권을 제정하였다.” 당의 육덕명은『석문』에서 말하기를 “『중용』은 공자의 손자 자사가 지은 것으로 조상의 덕을 밝힌 것이다. 왕숭간은『중용』이 단행본이 된지 오래되었다고 하였다. 송나라 유자들이 표장이 이정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잘못된 것이다.”
〇星湖先生曰人知程子始表章庸學。然橫渠長於明道一歲。其十八時。范文正已勸讀中庸。則程子前有其人矣。唐李翱復性書。節節尊尙。已見得四書規模。則范張前有其人矣。梁簡文謝勑賚中庸講疏啓曰。天經地義之宗。出忠入孝之道。實入敎之關鍵。德行之指歸。自非千載有聖。得奉皇門。無以識九經之倫。稟二門之致。其見識可謂卓絶。此則李翱前有其人矣。
성호선생이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이 정자가 중용학을 표창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장횡거가 정명도보다 한살 많았는데 그가 18세 되었을 때 범문정이 이미 중용읽기를 권하였으니 정자에 앞서 그런 사람이 있었다. 당의 이고는『복성서』에서 구절마다 존숭하니 이미 사서의 규모를 얻게 되었다. 그러므로 범문정과 장횡거 이전에 그런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양의 간문은『중용강소』를 내려주신 성상(아버지 양무제)의 은혜에 감사로 계를 올리면서 ‘천경과 지의의 바탕이고 충으로 들어가고 효로 나오는 도이니 실로 입교의 핵심이며 덕행의 뜻이다. 저절로 천년 만에 성인이 계셔서 황제의 문을 받들지 않았더라면 9경의 부류를 가지고 2문[老佛]의 귀치를 여쭐 수 없었을 것이다.’하니 그 식견이 탁월하다. 그러니 이고에 앞서 그런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鏞案中庸大學。已自西京以來。有專治其義者。然其別爲一書。用之科擧者。自元仁宗始也。元仁宗剏八比法。始用朱子章句取士。禮記四十九篇鄭目錄。中庸第三十一。
내가 살펴보니 중용·대학은 서경[西漢]이래로 그 뜻을 알고자하는 자가 있었다. 그런데 별도로 하나의 서책으로 과거에 사용된 것은 원 인종부터이다. 원 인종은 팔비법(팔고문)을 창안하여 주자 장구를 사용하여 선비를 뽑았다. 예기는 49편이고 정현의 목록에 의하면 중용은 31편이다.
〇鏞案漢初高堂生傳禮十七篇。后蒼校之於曲臺。今之儀禮是也。孔壁儀禮本五十六篇。十七篇之外。絶無師說。今亡。藝文志周官經六篇。亦出孔安國。見後漢書儒林傳劉歆得之。傳于杜子春。以及於鄭衆、鄭玄。今之周禮是也。又劉向所考五禮。梁人戴德、戴聖刪定爲四十六篇。馬融又增三篇。今之禮記是也。中庸大學。本禮記中二篇。其拔之禮記之中而別自爲書。自元仁宗始也。
내가 살펴 보건데 한초에 고당생이 예 17편을 전하니 후창이 곡대에서 이것을 교정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의례이다. {공벽 의례본은 56편인데 17편 외에는 전혀 사설이 없고 오늘날 망실되었다.} 예문지의 주관경 6편이 역시 공안국에게서 나왔는데 {후한서 유림전에 보인다} 유흠이 이것을 얻어 두자춘에게 전하였고 정중·정현에까지 이르렀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주례이다. 또 유향이 고증했던 오례를 양나라 사람 대덕·대성이 이것을 산정하여 46편을 마련하였고 마융이 3편을 더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예기이다. 중용·대학은 본래 예기 가운데 두 편인데 예기 가운데서 이것을 발췌하여 별도로 책이 되게끔 한 것은 원 나라 인종부터이다.
鄭端簡古言曰虞松校刻石經于魏表。引漢賈逵之言曰孔伋窮居于宋。懼先聖之學不明。而帝王之道墜。故作大學以經之。中庸以緯之。又見唐氏奏疏〇鏞案此說不見鄭註。不見孔疏。而石經大學。本是僞書。所引賈逵之言。亦白撰也。後儒辨之極詳。虞松者。魏正始中人。鄭曉者明嘉靖間人。唐氏者。萬曆間人也。毛大可曰隋書經籍志。有中庸講疏一卷。當時輯經者。曾抽大學中庸二篇。幷論語孟子合稱小經。而有宋因之。遂改名四書。
정단간이『고언』에서 “우송은 위표에서 석경을 교정하여 새길 때 한의 가규의 말을 인용하여 ‘공급[자사]이 송나라에서 궁핍하게 살고 있을 때 선성의 학문이 밝지 못하고 제왕의 도가 퇴락할까 두려워하였다. 그러므로 대학으로 경을 삼고 중용으로 위를 삼았다.’{또한 당씨 주소에도 보인다.}고 하였다.” ○ 내가 살펴보니 이 설은 정현의 주석에는 보이지 않는다. 석경대학은 본래 위서이다. 인용했다는 가규의 말 역시 근거 없는 헛된 논변이다 후기 유자들의 논변이 지극히 상세하다.{우송은 위나라 정시연간의 사람이다. 정효는 명나라 가정 연간의 사람이다. 당씨는 만력 연간의 사람이다.} 모대가[모기령]가 말하기를, “수서 경적지에 중용강소 1권이 있었다. 당시 경을 편집하는 사람들이 일찍이 대학 중용을 뽑아 논어 맹자와 병합하여 소경이라고 하였다. 송대에 이로 말미암아 사서라고 이름을 바꾸어 부른 것이다.”
〇鏞案此人心嫉程朱。欲奪中庸大學表章之功。歸之前代。故屢爲此說。然今考唐書選擧志。凡禮記春秋左氏傳爲大經。詩周禮儀禮爲中經。易尙書公羊傳穀梁傳爲小經。又唐書百官志云論語孝經爾雅。不立學官。附中經而已。宋史選擧志云元祐四年。以詩禮記周易左氏春秋爲大經。書易公羊穀梁儀禮爲中經。論語孟子孝經爲小經。選擧志又云淳化元年。明法更定試七場。第四第五場試小經。
〇 내가 살펴보니 그 사람의 마음이 정주를 질투하여 중용 대학을 표창한 공을 빼앗아 전대로 돌리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누이 이설을 말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 당서 선거지를 살펴보니 무릇 예기·춘추·좌씨전은 대경이고 시경·주례·의례는 중경이며 역경·상서·공양전·곡량전을 소경이라 하였다. {또 당서 백관지에 따르면 논어· 효경·이아는 학궁을 세우지 않고 중경에 부속하였다.} 송사 선거지에 따르면 원우 4년에 시경·예기·주역·좌씨·춘추는 대경이고 서경·공양전·곡량전·의례는 중경이며 논어·맹자·효경은 소경이라 하였다. {또한 선거지 순화 원년에 명법을 개정하여 일곱 마당을 시험 칠 때 넷째와 다섯째 마당에서는 소경을 시험 보았다.}
故王應麟玉海云唐明經取士。以三經三禮三傳爲九經。國朝方以三傳合爲一。又舍儀禮而以易詩書周禮禮記春秋論語孝經爲九經。何嘗以中庸大學列爲四書而謂之小經乎。朱子章句之前。中庸大學。本不能別自爲書。何得列數於選擧之目。而曰大曰小乎。誣罔甚矣。
따라서 왕응린은『옥해』에 말하기를, 당나라에서 명경과로 선비를 뽑을 때 3경·3례· 3전으로 9경이 된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3전을 합하여 하나로 하고 또 의례를 빼고 역경·시경·서경·주례·예기·춘추·논어·효경이 9경이 되었다. 어떻게 중용·대학을 나열하여 사서가 되게 하고 이것을 일컬어 소경이라 했겠는가? 주자 장구이전에 중용·대학은 본래 별도의 책이 아니었다. 어떻게 선거지의 목차에 수로 나열하여 대경이라 하고 소경이라 하는가? 속이는 정도가 참으로 심하다.
第 一 章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道也者,不可須臾離也;可離,非道也。
是故君子戒愼乎其所不睹,恐懼乎其所不聞。
莫見乎隱,莫顯乎微。故君子愼其獨也。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發而皆中節,謂之和。
中也者,天下之大本也。和也者,天下之達道也。
致中和,天地位焉,萬物育焉。
하늘이 명한 것을 일컬어 성이라고 하고, 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고 하며, 도를 닦는 것을 교라고 한다.
도라는 것은 잠시도 [사람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떨어질 수 있다면 도가 아니다.
이런 까닭으로 군자는 보이지 않아도 경계하고 삼가며 들리지 않아도 두려워하고 조심한다.
감추어진 것보다 더 드러나는 것은 없고 작은 것보다 더 뚜렷한 것은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음에 삼간다.
희노애락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을 중(中)이라고 하고
나타나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고 한다.
중이라는 것은 천하의 큰 뿌리요, 화라는 것은 천하에 도가 이루어짐이다.
중화를 극진히 하면 천지가 제자리에 서고 만물이 자라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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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암 강학에 앞서, 성지 주임 김동원 신부님의 성체강복 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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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암 강학에 앞서, 성지 주임 김동원 신부의 성체강복 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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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주임 김동원 신부의 천진암 강학, 봉사자들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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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암 이벽과 다산 정약용의 중용 이해]에 관한 천진암강학을 하는 이향만 교수(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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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암 이벽과 다산 정약용의 중용 이해]에 관한 천진암강학을 하는 이향만 교수(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Writer : 천진암   Date. 2016-09-04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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