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예루살렘 비아 돌로로사 제 11~12처 :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돌아가심>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시편 50, 23. 화답송 후렴)
세상에서 가장 하기 쉬운 일은 '욕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남의 험담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만큼 재미있고 그것만큼 짜릿하고 그것만큼 돈 들지 않는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이렇게 하기 쉬운 일들도 내가 다른 사람을 상대로 했을 때 그런 재미와 쾌감이 있는 것이지, 내가 그렇게 입방아 찧을 대상에, 도마 위에 올려졌다고 생각한다면, 그 판단과 평가는 달라질 것입니다. 이럴 때 내가 그렇게 다른 사람을 도마 위에 올려놓을 자격이 있는가? 없는가? 의 차이는 둘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쉽고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우리가 하지 않고 살기란 참 어렵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제대로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독서와 복음을 통해서 들을 수 있는 말씀은 그렇게 맘에 들지 않는 세상의 모습을 보았을 때,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주제는 간단합니다. 실망하여 비판하기보다는, 실망한다고 하더라도 달리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하느님의 소리를 선포할 때, 소돔과 고모라라는 도시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도시였습니다. 어느 곳에 있었는지 정확하게 아는 이도 없었습니다. 다만 사해바다 어딘가에 가라앉아 있다는 '전설의 도시'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사는 고관들과 백성들을 향하여 외치는 소리가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듣는 말씀은 '경고'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차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 이 도시도 같은 운명을 겪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없어져 버린 도시와 같은 길을 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 독서에 나오는 말씀대로 우리가 삶의 방법을 바꾸면 됩니다. 독서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고, 악한 행실을 치워버리고, 선행을 베풀면” 됩니다. 참으로 일반적인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오늘의 독서 말씀을 듣고서 이 말씀이 경고라고 받아들인다면 좀 더 조심에 조심을 더해서 살아야 하는 것이고,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상황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서 한번이라도 기도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창세기 18장- 19장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에는 단 10명의 의인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바꿀 의인들이 없어서 멸망한 도시로 나옵니다. 우리가 그 안에 살고 있지 않는 것을 기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서 기도하며 또 다른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통해서 생각할 수 있는 말씀도 비슷하다. 어떤 노인 신부님이 고백하기를 “욕망 중에서 가장 끊기 힘들고, 지금도 나를 괴롭히는 것은 명예욕이다.” 라고 하신 것을 보면 이것을 포기하기란 매우 어렵고 힘든 것입니다. 명예를 지니면 내가 남보다 낫다고 여기고, 생활 자체가 보이기 위한 것으로 거짓으로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 사람들을 본받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말만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 사람들만큼 열심히 산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많은 단식을 했으며, 누구보다 많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율법도 철저히 지켰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비판을 당하는 것은 겉과 속이 다른 행동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좋은 모습만 보였지만 속마음은 정반대였던 것입니다.
언제인가 인터넷의 자유게시판에 누군가 우스운 이야기를 쓴 것을 보았습니다. ‘세상에서 마귀의 활동이 가장 열심인 곳은 어디이겠는가?'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자신의 바닥을 보여주는 단란주점에는 마귀가 한 마리만 꾸벅꾸벅 졸고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자신감을 잃은 사람들만 살고 있으니 더 이상 마귀의 역할이 필요 없는 장소였다는 것입니다. 그 우스운 이야기의 결말은 '마귀가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곳'은 사제관이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짐작은 하시겠지요?
복음의 말씀에 비추어 내 자신의 삶을 돌아 볼 때, 신부들은 세상을 살아가며 온갖 좋은 이야기는 많이 합니다. “이렇게 살면 안 됩니다.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는 만큼, 이야기하는 만큼 자신은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자리를 차지하는 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높은 곳, 더 좋은 곳을 원하고 찾습니다. 예를 들어 음식점에 가도 상좌를 차지하고, 차를 타도 상좌에 앉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섬기는 자의 모습인지요? 인사를 먼저 하기보다는 받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지도자 스승으로 살아갑니다.
이런 모습을 생각해 보면 저 자신이 정작 현대판 바리사이요 율법학자들이 아닌가? 라는 느낌에 자책감이 들기도 합니다. 이제 이런 모습을 바꾸어야 합니다. 거짓의 탈을 벗어버리고 진실한 모습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척하는 마음”을 버리고 하느님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머리로 많을 것을 가지고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입으로 좋은 내용을 아무리 많이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내가 단 한가지만을 알고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몸으로 실천하고 살 수 있는 것이,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바른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삶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추구해야 합니다.
사순절은 따뜻한 하느님의 마음을 회복하는 시기입니다. 거짓되고 포장된 “~~척하는 마음”, 위선의 마음을 없애고 바르고 정직한 삶으로 돌아가 하느님의 따뜻한 마음을 회복하는 시기입니다.
혹시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내가 혹시나 현대판 율법학자, 바리사이가 아니었는지? 반성해 보고, 만일 겉과 속이 다른 나의 모습이 있다면 과감히 던져 버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대한 똑같은 마음, 변함없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예수님께 기도하며 은총을 청해야 하겠습니다.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화답송 후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