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예루살렘 비아 돌로로사 제 14처 : 예수님께서 묻히신 두번째 방>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4, 14)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과 한 사마리아 여인의 우물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복음을 읽으며 “장애인의 희망인 헬렌 켈러”의 삶을 생각해 봅니다.
헬렌 켈러는 생후 6개월 무렵 심한 병을 앓고, 그 후유증으로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듣지 못하자 말도 못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그녀는 마치 야생 동물처럼 사람들과 의사소통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헬렌 켈러는 죽기 전에 이미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정규 대학을 우수생으로 졸업했고, 많은 책들을 출판했으며, 전 세계의 수많은 장애인들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주었던 것입니다.
헬렌이 중복장애인이면서도 이렇게 놀라운 업적을 일구어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20살 된 애니 설리번이라는 개인교사의 숨은 공로와 노력이 있었습니다. 헬렌이 저술한「내 생애 이야기」라는 책에서 자신이 어떻게 중복장애를 뛰어넘게 되었는지를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887년 어느 화창한 봄날 헬렌은 그녀의 선생님과 함께 봄나들이를 나갔습니다. 따뜻한 햇살을 느끼며 선생님이 가져온 모자를 쓴 헬렌은 지붕이 있는 우물가에 도달했습니다. 선생님은 헬렌의 한쪽 손을 흐르는 물속으로 놓고는 다른 쪽의 손바닥에다 천천히「물」 W - A - T - E - R 라고 손가락으로 그려 주었습니다. 헬렌은 갑자기 선생님이 한쪽 손바닥에 그려준“WATER(물)” 라는 글자가 또 다른 손에 느껴지는 시원하면서도 지속적으로 흘러내리는 어떤 물체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 순간 헬렌의 몸과 마음은 황홀해지고 뭔가 번쩍하는 듯한 섬광을 느꼈다고 기록합니다. 그녀는 빛과 희망과 기쁨 속에서 살아있는 말(언어)을 깨우친 것입니다.
헬렌은 선생님의 손을 잡고 그동안 너무나도 궁금했던 모든 물체들의 이름을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어떤 물체를 만지면 한쪽 손바닥에는 어김없이 그 이름이 선생님의 손가락으로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무, 바-위, 신-발, 모-자 등등. 그녀가 끊임없이 만지는 물체들은 이제 그녀의 영혼 안에서 새롭게 탄생하고(이름 지워지고) 있었습니다.
이 우물가의 체험은 헬렌의 삶을 영원히 그리고 새롭게 바꾸어 주었습니다. 헬렌 켈러의 이야기와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비슷합니다. 장소가 우물가라는 점, 선생님과 제자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이며, 물을 매개로 하여 대화와 깨달음이 일어났다는 점, 그리고 스승의 메시지가 제자의 삶을 영원히 바꾸었다는 점이 비슷합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변화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의 깨달음이 있다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지치고 피곤한 마음으로 미사에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깨달음을 얻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지금 나와 있는 이 성당은 어찌보면 성경에 나오는 “야곱의 우물”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여인처럼 영원한 생명의 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곳에서 영원한 물과 생명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야 합니다.
신학자들은 복음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을 우리 자신과 비교합니다. 보잘것없고 죄 많은 우리였으나,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물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고 또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런 현상을 보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사막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그에게 도움의 손길이 없다면 그는 목말라 죽게 될 것입니다. 그때 그는 야자나무를 보았고 물소리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지 환상일 뿐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무 것도 자기 앞에는 없다고 생각한 그는 절망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잠시 후 두 명의 원시인이 죽은 그를 발견하고 "너는 이것을 이해할 수 있는가? 물도 있고 야자열매도 있는데...." 하자, 옆 사람이 "그는 현대인이었어." 하고 말했고 합니다.
원시인이 말한 현대인이란 무엇인가요?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예수님의 가르침이 옳은 줄 알면서도 실천 불가능한 환상으로 여기는 경향, 예수님이 옆에서 목마르지 않는 물을 준다고 해도 다른 물을 찾으려는 미련함, 물질에는 갈증을 느끼면서 영적인 갈증을 느끼지 못하는 현대인을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바로 옆에 물과 야자열매가 있는데도 굶어죽은 것처럼 현대인들은 예수님이 옆에서 목마르지 않는 물을 준다고 해도 먹으려고 하지 않아 영적으로 굶어죽을 수밖에 없음을 비꼰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바보처럼 옆에 생명을 건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두고 죽어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미사 안에서 말씀과 성체를 통해서 주시는 생명수를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두레박으로 길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여인처럼 다른 이웃들에게 전해주어 그들도 모두 생명수로 목을 축이고 함께 살아 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아 뵙고 동네로 가서 소문을 퍼뜨립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예수님께 몰려왔으며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고 믿었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웃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사순절은 이렇게 생명수이신 예수님을 이웃들에게 알리는 시간입니다. 그리하여 그들도 생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끄는 시간인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남은 사순절을 살아간다면 우리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벅찬 부활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