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 갈릴래아 지방 가파르나움 회당 - 지금은 기둥과 한 쪽 벽면만 남은채 부서져 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루카 4, 34)
루카복음 전체를 보면 예수님의 사명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 세상에 파견되셨는지를 가장 잘 알려주는 복음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을 고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복음에서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은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큰 소리로 외칩니다.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먼저 마귀의 영은 사용한“저희”라는 표현은 복수로 그 수가 여럿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비록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은 한 사람이지만, 그 사람 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마귀는 여럿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마귀들이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어떤 능력을 지니고 계신 분이신지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십니다.” 언뜻 들어보면, 더러운 마귀들이 마치 베드로 사도가 한 고백처럼, 예수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마저 듭니다.
그러나 마귀들의 실체는 그 앞의 말에서 드러납니다.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마귀들은 한 마디로 예수님의 간섭을 받고 싶지 않은 존재들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과 아무 “상관없이” 살려고 하는 존재들이며, 또 아무 상관없이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떤 능력을 지니고 계신 분인지를 알면서도, 그분께 속하지 않으려고 하는 존재들이 바로 마귀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실을 전제로 하고서 우리의 삶을 돌아볼 때, 우리 신앙인들은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잘 알고 있으며, 우리가 아는 그대로 그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 예수님께서 간섭하시기를 꺼려하고, 그것을 원치 않으면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마귀의 세력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 삶의 모든 것, 내가 하는 일의 전부를 예수님께 봉헌하고, 그분과의 관계맺음 안에서 살아가지 않고 그분과 아무 상관없이 살아가고자 한다면, 그리고 아무 상관없이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마귀의 세력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나에게 이익이 되고, 이득이 되는 일에는 어떻게든 예수님께서 간섭하셔서 잘 이끌어 주시고 좋은 결과를 내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내 양심에 거리끼는 일들, 또는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만을 채우려고 신앙이고 뭐고 다 뒤로 제쳐놓고 하게 되는 일들을 하고자 할 때에는 예수님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처럼 되고자 합니다. 나는 예수님 당신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니 그저 눈감아 주시고 모른 척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에 과연 그 사람이 오늘 복음의 마귀 들린 사람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런 마음은 진실한 신앙인의 마음이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복음을 통해서 나타나는 예수님의 사명의 모습은 “새로운 창조자”로써의 역할입니다. 맨 처음 하느님이 당신의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듯이 예수님 역시 자신의 말씀으로 우리를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악의 세력을 당신의 말씀으로 물리치시고 혼돈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을 새롭게 창조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우리의 신앙인의 삶은 예수님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은 사람들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고백하듯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예수님과 상관없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내 모든 존재,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간섭을 받아야 합니다. 내 모든 삶, 내 일거수일투족은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내 마음 속에 예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세력이 자리 잡을 수 없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간섭 없이 우리는 올바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매일을 살아가면서, 예수님께서 오늘 나의 삶을, 내 일거수일투족을, 또한 내 생각과 말과 행위 모두를 간섭하시도록 자리를 내어 드리는 것이 바로 신앙인의 삶이라고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