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품 받고 첫 보좌 신부일 때 아이들 신앙학교를 준비하면서 교사 중에 겨우 일곱 살 된 아이를 먼저 떠나보낸 한 어머니 교사의 주체 못할 슬픔을 옆에서 지켜본 적이 있었습니다. 작은 철사로 눈을 찔러 병원에서 잘 수술을 마치고 호전되던 중 음식을 잘못 먹어서 다시 죽음을 맞게 된 것입니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건만 결국 싸늘하게 식은 아이의 시신 앞에 오열하는 어머니에게 그 어떤 위로의 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원하는 대로 당시 아이들을 위한 묘지가 따로 있었던 명동성당 모현 묘지를 알선해 주었지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게 다였습니다.

어머니에게 아이가 떠나간 빈자리는 너무도 커 보였습니다. 식사는커녕 밤잠마저 이루지 못해 몰골은 말이 아니게 변해 갔고, 하도 울어 눈물마저 말라버렸습니다. 그렇게 잊으려 잊으려 해도 스쳐 지나가는 세상 모든 것이 다 죽은 아이와 연결되어 도저히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 보였습니다. 길을 지나가다가도 또래 아이들만 만나면 즉시 가슴이 미어져왔고, 평소에 아이가 좋아하던 음식만 봐도 당장이라도 “엄마!” 하고 외치며 아이가 뛰어올 것만 같았다고 합니다.

슬픔 중에 가장 사무치는 슬픔, 세상에서 가장 깊은 슬픔은 무엇보다도 아이를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의 슬픔일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은 죽으면 가슴에 묻는 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나인의 과부는 상황이 더욱 심각했습니다. 당시 가부장적인 유다 사회 안에서 과부란 것만 해도 최악의 상황이었는데, 거기다 외아들까지 잃었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나인의 과부가 느낀 슬픔은 죽음보다 더한 슬픔이었을 것입니다.

남편을 여의고 나서 여인에게 펼쳐진 고통의 세월은 그나마 견딜 수가 있었습니다. 외아들이란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설움이 복받칠 때마다 무럭무럭 성장하는 아들을 보며 달랠 수 있었습니다. 과부이기 때문에 손가락질 당할 때마다 효성 지극하고 총명한 아들만을 바라보며 견뎌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마지막 희망이 사라진 것입니다. 과부의 삶은 외아들의 죽음으로 이제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나인”이란 말은 “아름다움”이란 뜻입니다. 아름다운 나인이 한 어머니의 통곡소리로 인해 죽음의 성이 되었습니다. 과부의 통곡소리가 얼마나 크고 슬펐던지 나인 구석구석까지 그 소리가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너무도 안쓰러운 나머지 너나 할 것 없이 장례 행렬에 참여하여 큰 무리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이런 과부의 사무치는 슬픔을 자비의 예수님께서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도 큰 슬픔에 잠겨있는 과부의 얼굴을 눈여겨보신 예수님께서는 측은한 마음이 들어 다가가십니다. 지칠 대로 지친 과부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며 따듯이 위로해 주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슬픔의 원천인 죽음마저 물리치십니다. 예수님께서 나인에 입성하시면서 죽음은 생명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슬픔은 환희로 바뀌었습니다. 죽음을 이긴 부활의 희망이 성안에 가득 차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유는 바로 우리 인간의 결핍 때문입니다. 우리의 고통, 우리의 상처, 우리의 부끄러움, 우리의 한계, 우리의 과오, 우리의 실수, 우리의 치부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이 과부가 남들 앞에서 눈물짓는 것이 창피하다고 울지도 않고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면 과연 그 아들이 죽음에서 구원받을 수 있었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솔직하게 눈물을 짓고 슬퍼하는 그 모습이 바로 젊은이가 다시 태어나는 은총을 얻게 되는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 숨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너무나 많이 숨기려고 합니다. 그래서 나의 밝은 모습, 좋은 모습만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나의 어두운 구석까지도 모두 사랑하십니다. 오히려 솔직한 우리들을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슬픔을 아시고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오셔서 우리를 향해 “울지 말라.”고 다정하게 우리의 등을 두드리십니다. 더 나아가 우리를 슬픔과 고통으로 부터 "일어나라."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려는 노력입니다. 에수님으로부터 우리를 향해 하시는 구원의 말씀을 마음으로 들어볼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