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영광 불갑사 꽃무릇 - 추석을 전후하여 개화합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면.......우리의 복음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코린토 1서 15, 13~14)
세상은 너무나 불공평해 보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착하게 사는 사람이 행복하게 잘 살아야하고 놀고먹으면서 나쁜 짓만 하는 사람은 불행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아 보입니다. 착하게 살려는 사람이 오히려 가난하고 힘들게 세상을 살고, 나쁜 짓만 하면서 사는 사람이 좋은 집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하느님이 창조하신 우주의 질서는 참으로 정의롭습니다. 수증기는 밑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빈자리를 만들고,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면서 빈자리를 채웁니다. 참으로 공평하고 정의로운 우주의 질서를 보면 같은 하느님이 만드신 사람들의 세상도 공평하고 정의로워야만 합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이 어려운 문제의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바로 부활입니다. 세상이 불공평하게 보인다는 것은 사람이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 후에 부활이 있다는 것을 오히려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보장받은 우리들의 부활은 결국 세상은 공평하고 정의롭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성당이나 예배당에 다니는 사람들을 우리는 그리스도교 신자라고 부릅니다. 신자, 믿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도대체 무엇을 믿는다는 말이겠습니까?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고,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고, 우리도 예수님처럼 죽었다가 부활한다는 것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불공평한 세상에만 희망을 걸고 살지 않고 부활에 희망을 걸고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부활에 대한 희망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될 것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의 곁에 많은 여인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 예수님 시대에 성차별은 대단했습니다. 여성을 사람으로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유명한 스승의 제자들은 언제나 남자뿐이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이것 역시 불공평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는 많은 여성 제자들이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열 두 제자를 부를 때처럼 여성들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예수님께 의지하려 하였고, 예수님과 함께 하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당신의 제자로써 삼았던 것입니다.
2000 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예수님께서는 어떤 차별도 없이 우리들 모두를 당신의 아들, 딸로 받아주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들처럼, 네가 남자라서, 네가 여자라서, 너무 어려서, 돈이 없어서, 장애인이라서, “넌 안 돼.”라고 우리를 내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우리들의 주님을 따르겠다고 하는 의지가 먼저 필요합니다. 그때 우리는 예수님의 진실된 제자가 될 수 있고,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