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회개를 위한 눈물의 기도로 깊게 주름이 파인 성녀 모니카>
성녀 모니카 축일입니다. 축일을 맞으신 모든 분들에게 축하드립니다.
성녀 모니카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어머니로 당시 이단인 마니교에 심취한 아들의 회개를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신 분입니다. 아들의 방탕한 생활로 인하여 당시 고향인 타카스케의 주교님을 찾아가 눈물로 하소연할 때 주교님은 "안심하십시오. 그런 눈물의 아들은 결코 멸망될 수 없습니다." 하고 말했고, 그녀는 그 말을 천상으로부터 받은 대답으로 생각하고 더할 수 없는 위로를 받았다고 전하여지고 있습니다.
아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 역시 그의 저서인 고백록에서 “아들아, 내게 있어서 세상 낙이라곤 이제 아무것도 없다. 현세의 희망이 다 채워졌는데 다시 더 할 것이 무엇인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이 세상에서 좀 더 살고 싶어 했던 것은 한 가지 일 때문이었다. 내가 죽기 전에 네가 가톨릭 신자가 되는 것을 보겠다고... 그랬더니 천주께선 넘치도록 은혜를 베푸셨다." 하고 이야기하며 어머니의 간절한 그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녀 모니카의 아들에 대한 사랑은 지중해 북아프리카에서 건져낸 진주 빛 사랑이리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빛은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는 은은한 빛이 되어 조금씩 날이 갈수록 마음속에서 익어가는 그런 사랑 말입니다. 이런 모니카의 사랑과 기도는 자녀 문제로 힘들어 하는 모든 부모들에게 자녀의 회개를 위해서 눈물로 항구히 기도한다면 그 소망이 이루어지리라는 새로운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어느 시각 장애인 소녀가 연을 날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지나가던 사람이 소녀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왜 연을 날리니? 아무 것도 볼 수 없으면서…”
그 말에 소녀는 방긋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나는 볼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내 연을 보고 기뻐할거에요. 그리고 나도 연이 나를 하늘 위로 끌어당기고 있는 듯한 느낌이 좋아요.”
이 소녀의 행동은 남들이 보기에는 어리석어 보이는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이 소녀는 앞을 볼 수 없기에, 하늘 높이 나는 연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행동을 하지 않던가, 아니면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해야 정상일 것입니다. 하지만 소녀는 자신의 단점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내어 주려는 마음을 가졌고 그 순간에 하늘로 끌어 당겨지는 느낌의 행복이라는 것을 얻게 된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들이 잘 아는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우리는 이 비유 말씀을 통해, 우리들이 받은 달란트는 무엇인가 라고 고민을 하곤 합니다. 즉, 왜 저 사람에게는 저렇게 많은 달란트를 주고, 나에게는 주지 않는가? 나에게도 저 사람 만큼의 달란트만 있다면 보다 더 열심히, 그리고 사랑을 전하면서 살텐데… 라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달란트라는 것이 하느님께도 의미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복음에서도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십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 분명 달란트의 수가 다르지만, 그들에게 원하시는 바는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섯 달란트로 다섯 달란트를 만든 사람이나, 두 달란트로 두 달란트로 만든 사람이나 똑같이 칭찬을 하시는 것입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하지만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그대로 가져오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즉,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현재 자신의 능력 없음에 한탄하면서 그냥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자신이 받은 능력으로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입니다.
앞을 못 보는 소녀가 느낀 행복은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먼저 생각한 뒤에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날리는 연을 보고 기뻐하지 않겠느냐는 생각 뒤에, 소녀는 하늘 위로 자기를 끄는 그 기쁨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이 소녀가 나는 앞을 보지도 못하는데 하면서 연 날리는 것을 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기쁨, 행복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 기쁨과 행복도 내 앞으로 다가옴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