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 탈린 여행 중에-유혹하는 악마의 거리극>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에게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마태오 10, 17)
초대교회 때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결코 악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박해를 받을 수밖 에 없었던 이유 중의 가장 큰 것은 자신들과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자신들은 이방인들을 싫어했으나, 제자들은 이방인들 역시 하느님의 자녀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들 역시 신앙인이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과 다른 모습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배척을 받고, 그들에게 따돌림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3가지의 위안을 주십니다.
첫째는, 걱정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모두 일러주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참고 견디는 사람은 구원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셋째는,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이 말씀은 종말 때의 심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어려움이 우리 곁에 다가올 때 도움을 주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이런 위안을 받을 수 있기에 우리는 보다 더 신앙인답게, 또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답게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우리 선조들의 순교의 피로서 신앙을 지켜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칼이 목을 겨누고 있어도 하느님을 배반하지 않고, 목숨을 바쳐서 신앙을 수호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주신 위의 3가지 위안이 힘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조상님들을 두고 있는 우리들은 하느님의 은총이 참으로 크심을 말하지 않을 수 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박해의 시대가 아닌 참으로 자유롭게 주님을 찬미할 수 가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주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미움과 박해는 여러 가지 형태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어리석다는 핀잔으로, 남들처럼 편하게 휴일을 보낼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으로,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라는 손짓으로, 위협적인 권력의 힘으로, 때로는 이기주의와 물질주의가 가장 합리적이라는 가면을 쓰고 신앙인에게 다가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끝없는 결단의 길입니다. 신앙이란 어떠한 처지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굳건하게 지켜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어떠한 처지에서도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역설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인은 어떠한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꿋꿋하게 예수님의 길을 따라갈 수 가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믿는 마음으로 용기를 지니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죽음을 맞는데서 제외될 수 없습니다. 제자들과 같은 순교는 아니지만, 이 죽음 앞에서 누가 선하게 살아왔는지? 악하게 살아왔는지? 선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세상의 타협과 유혹이라는 큰 박해 앞에서 비겁하게 죽음을 맞이하지 말기를 희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