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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꽃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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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꽃자리
  1. 삶의 꽃자리


연중 제 7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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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 바니야스 폭포>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태오 5, 44)

구약의 율법과 그리스도 예수님의 가르침이 근본적인 차이점을 드러냄을 오늘의 복음은 보여줍니다. 물론 구약의 율법에서도 복수를 악한 행동으로 간주했지만, 남으로부터 피해를 입었으면 입은 그만큼 보복을 하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탈출기를 보면 목숨은 목숨으로 갚아야 하고,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화상은 화상으로, 상처는 상처로, 멍은 멍으로 갚아야 한다.”(21, 23-25)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모든 것들은 옳지 않은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여라.”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이처럼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인간관계를 의미합니다. 즉 사랑의 관계,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그것은 완전히 마음을 새롭게 하고, 영혼 내부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모든 이를 포용해 줄 수 있어야 하며, 아무리 악독한 원수라 할지라도 배척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참 사람은 원래 한계가 없는 법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라고 말씀하신대로 무한한 사랑을 베풀 것을 요구하십니다.

복음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첫째로 요구하시는 것은 기도도 아니고 종교 활동도 아닙니다. 오직 사랑,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그것입니다. 더 나아가 마음이 사랑으로 정비되었다면 반드시 행동으로 옳길 것을 요구하십니다. 사랑이 없는 행동은 남의 이목에는 좋게 보여질지는 몰라도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런 가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코린 13, 3)

참 사랑은 오직 하느님께로부터 나옵니다. 요한 사도가 말씀하신 것처럼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요한 4,8). 그리고 이 사랑으로서만이 미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미움은 미움을 이기지 못하며, 미움으로써는 미움을 무디게 할 수도 없습니다. 미움은 미움을 더하게 할 뿐입니다. 사랑은 미움보다 강하고, 선은 악보다 강하여 항상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수에게 사랑으로 대할 때, 원수의 마음까지도 녹일 수 있게 됩니다. 그때 이 세상에서는 그만큼 미움이 가시고 평화가 깃들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은 하느님을 믿는 마음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을 위해서 행동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무엇보다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누가 뭐래도 삶이 거룩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의 빛이 될 수 있고 또한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 하느님께서 거룩하시니 우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만일에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삶이 거룩하지 못하면 그는 하느님을 모독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사랑 실천이 바로 거룩한 삶의 지름길이 됩니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너무 쉽고 즐거우면서도, 다른 한편 또 너무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이를테면 나한테 잘해 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쉽습니다. 내 시간과 내 정력이 아깝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는 삶의 에너지가 크게 생깁니다. 그러나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죽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에게는 저주를 내리는 것이 더 쉽고 더 유쾌한(?) 일입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는 일이 위대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굉장히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더 공로가 되고 더 은혜가 됩니다. 자신이 죽어야만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이라면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이요, 하느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억지로라도 원수를 사랑할 수 있을 때 그는 큰 축복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원수가 되었던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배반하여 그분의 계명을 소홀히 한 잘못도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래도 하느님은 우리를 늘 용서해 주셨으며 청하지 못하는 은혜까지도 채워 주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서로 사랑합시다. 특히 원수를 사랑하도록 합시다. 이것이 하느님의 거룩함을 닮는 아름다운 길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마지막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한 사람이 되는 길이고,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신 하느님의 거룩한 성전이 되는 길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이미 하느님 나라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될 것이고, 더 나아가 하느님의 백성,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입니다.


Writer : 송병선 신부   Date. 2017-02-19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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