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의 경전인 “탈무드”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12가지의 강한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는 먼저 “돌”이 있다.
하지만 돌은 “쇠”에 의해서 깎이고 다듬어진다.
쇠는 다시 “불”에 의해서 녹여진다.
불은 다시 “물”에 꺼져 버린다.
물은 “구름”속에 흡수되어 버린다.
물론 구름은 “바람”에 의해서 이리저리 밀려다닌다.
그런데 바람은 “인간”을 불어 날릴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인간은 “공포”에 의해서 처참하게 무너진다.
공포는 “술”에 의해 잊혀진다고 한다.
반면에 술은 “수면-잠”에 의해서 제거가 된다.
하지만 수면은 “죽음” 만큼 강하지가 못하다.
그리고 그 죽음조차도 “사랑” 만큼은 이기지를 못한다.
이 글의 내용을 보면서 사랑이 정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가장 약해 보이는 것이 바로 사랑이며, 약한 자의 말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 사랑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정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이 사랑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악령 들린 자녀를 둔 아버지가 예수님께 이렇게 청합니다.
"이제 하실 수 있다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
이 말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이 말에 아이의 아버지는 다시 자신의 말을 수정해서 큰 소리로 말합니다.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믿음은 바로 사랑에 기초해서 나옵니다. 사랑이 없다면 믿음도 생기지 않습니다. 만약 이 아버지가 자신의 악령 들린 자녀를 포기했다면 이런 말을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커다란 사랑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 도와 달라고 청했던 것이고, 자신의 이 사랑이 부족하다면 예수님 당신이 도와 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이 아버지는 자신의 사랑도 하느님의 사랑보다는 작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도와달라고 청했던 것입니다. 그런 겸손함으로 인해 이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을 살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랑은 어떠한가요? 혹시 내 사랑이 이 세상의 어떤 사랑보다도 크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예수님께 자신의 사랑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무조건 도와 달라는 이기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오늘 복음을 다시금 읽으시면서, 겸손한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이 언제나 예수님의 사랑을 닮도록 청했으면 합니다.
사랑은 하느님께로 옵니다. 이 사랑을 알고, 실천하는 지혜도 하느님께로부터 옵니다. 결국 모든 것은 하느님께로부터 예수님을 통해서 오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참된 지혜인 것입니다. 이런 지혜를 오늘 청했으면 합니다.
"주님, 저의 사랑이 부족하다면,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