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은 자기의 본모습을 찾는 시기입니다. 하느님이 나를 창조하셨을 때의 그 모습을 찾는 시기입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돕는 신부님이 계셨는데, 신부님은 노숙자들이 성당에서 쉬어갈 수 있도록 방도 만들었습니다. 다만 신부님께서는 찾아오는 노숙자가 예수님만 믿는다는 말을 하던지 아니면 믿겠다는 말을 해야만 하룻밤을 쉬어갈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어느 날 밤, 이 신부님께 너무나 피곤해 보이는 거의 80세가 넘은 노인 한 사람이 찾아왔고, 그 노인은 성당에서 하룻밤 쉬어갈 수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평소처럼 이렇게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아니요.” “그럼 앞으로 예수님을 믿으실 것인가요?” “아니요. 저는 무신론자이고…… 앞으로도 신의 존재를 믿을 생각이 없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성당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 없다고 단오하게 말을 했고, 노인은 큰 실망을 하고서 순순히 성당 밖으로 아주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나서 신부님은 다시 방으로 들어와서 성경책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이러한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를 내쫓았는가?”
“그 사람은 무신론자랍니다. 이곳은 당신을 믿는 사람들이 묵기에도 비좁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러하냐? 하지만 나는 그 무신론자가 이 성당으로 돌아오기를 자그마치 80년 동안이나 기다리고 있었단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신부님께서는 잠에서 깨었고, 그동안 자신이 가졌던 편견이 얼마나 큰 잘못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이렇게 쉽게 편을 가르고는 합니다. 그라고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가 가르고 있는 그 편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요? 완전하지 않은 우리 인간이 내리고 있는 그 판단이 정말로 올바른 것일까요? 그런 판단은 오히려 앞선 이야기처럼 예수님께서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을 내치는 엄청난 잘못을 저지를 수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서 마지막 심판 날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구원을 받는가요? 바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만 행하는 선행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그렇습니다. 나의 판단으로 내쳐지고 있는 나의 이웃이 바로 예수님께서 간절히 원하시는, 그래서 나의 구원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과연 최후의 심판 날에는 어느 쪽에 위치하게 될까요?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푼 사람들이 모이는 오른편일까요? 아니면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베풀지 않은 사람들이 모이는 왼편일까요? 아직은 왼편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렇다면 빨리 오른편으로 가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어제 사순 1주일 복음을 묵상하며 이런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유혹은 예수님보다, 하느님보다 내가 앞에 설 때는 이길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내 앞에 하느님을 세우면, 예수님을 세우면 반드시 우리는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자신보다 하느님을 앞세웠기에 모든 유혹을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순절은 이렇게 하느님을 우리 앞에 세우고 사는 시간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을 먼저 생각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할 때 나의 본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내가 창조될 때 주신 자신의 본 모습을 찾기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