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예루살렘 비아 돌로로사 제 8처 :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
"네가 제물을 제단에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마태오 5, 23~24)
어제 복음에서 우리는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내가 남에게서 사랑을 원하면 사랑을 주어야 하며, 내가 남에게서 용서받기를 원하면 용서를 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살인은 물론 자기 형제에게 화를 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욕하지 말며, 멍청이라고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것은 나도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대우받기를 원하지 않는 것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다른 사람에게 독한 말을 듣기를 원하겠습니까?
누가 다른 사람에게 멍청이라는 말을 듣기를 원하겠습니까?
누가 다른 사람에게 멸시를 받기를 원하겠습니까?
내가 원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인들 그것을 원하겠습니까?
아무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서로가 서로를 존경하며 평화롭게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 먼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그와 화해를 하고 나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정의의 실천을 외면한 채 고의로 내가 악한 줄 알면서 제사를 드린다면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하느님께 잘못한 것을 기워 갚기 위해서 제물을 바쳤습니다. 곧 하느님과 잘못된 관계를 회복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어느 누구를 고의적으로 용서하지 않는다면 이미 하느님께 용서를 받겠다는 자세가 안 된 것입니다. 이웃과의 관계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대변합니다. 화해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화해를 하기란, 용서를 하기란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렇다고 미룰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도 어느 누군가에 죄를 짓고 사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나의 잘못은 보지 못한 채 남의 잘못만을 생각하고 그들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그러면서도 나 자신이 하느님께 용서받으려고 한다면, 정말 부끄러운 일일 것입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 나에게 정말 마음 아프게 한 사람을 용서하기란, 화해하기란 정말 힘든 일이지만, 서서히 지워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실천이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마음 아파하며, 그것에 얽매여 있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그 상처를 지워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예수님의 은총을 간구했으면 좋겠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상처를 하나씩 하나씩 없애감으로써 내가 다시 살아나는 그런 사순 시기를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독한 말, 심한 말을 통해 상처를 받을 수 있듯이, 나는 그런 독한 말을 통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오히려 따뜻한 말, 사랑스러운 말, 위로를 하는 말로 우리가 정말 서로 사랑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 정말 감사하는 제사, 찬미하는 제사,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제사를 올렸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