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예루살렘 비아 돌로로사 제 9처 : 세번째 넘어지심>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오 5, 45)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자기를 좋아하고 따르는 사람들을 사랑하고픈 마음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할 것 없이 자기를 저주하고 미워한다면 당연히 미워지는 것이 인간의 본능적인 심리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마태오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의 본능적인 심리 상태를 뛰어넘어 어떤 형태의 사람이든지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원수마저도 사랑해야 하고, 우리를 박해하고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마저도 사랑하며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바로 이렇게 해야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종류의 사람들을 만납니다. 세상에 저런 사람도 있나?라고 생각될 정도로 인간적인 상식에서 벗어난 형태도 많이 접하곤 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고 받은 것도 없는데 괜히 미워지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에게 백번 잘했다 하더라도 한 번 눈 밖에 난 사람을 포용하는데 있어서 참으로 어려움을 느꼈을 때가 역시 많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을 원수처럼 취급하면서 평생을 두고 인간으로 보지 않으려는 마음을 우리의 가슴에다 지워지지 않도록 꼭꼭 새겨두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나의 가슴을 살펴 볼 때 아직까지도 용서되지 않는 사람이 적어도 하나, 둘 정도는 족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의 가슴에서 도저히 지워 버릴 수 없는 사람마저도 오늘 예수님께서는 사랑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정말로 환장할 일입니다. 용서하는 것 자체도 힘들어 죽겠는데, 한 술 더 떠서 사랑하라니, 도대체 무슨 말씀인지요? 라고 예수님께 되레 묻고 싶은 심정을 감출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아마 나의 가슴에 남아 있는 원수 같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어쩌면 인간적인 능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류를 사랑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친히 지신 십자가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지피시는 사랑의 불길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말로 우리들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살고 있다면 지금까지도 내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원수같이 느껴지는 그 사람을 용서해야 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태초부터 우리 사람들을 당신의 사랑으로 지어내신 하느님을 우리들이 진실 되게 사랑하고 있는지 우리 스스로에게 자문해 봅니다. 예를 들어 본다면 우리들이 참으로 사랑했던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남겨 놓은 보잘것없이 보이는 조그마한 흔적까지도 소중히 다루면서 그 흔적을 사랑하고 좋아할 것입니다. 아마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렇듯이 우리가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 태초부터 남겨놓으신 창조적 사랑의 흔적까지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원수처럼 여기는 그 사람도 결국 하느님 사랑의 흔적이며 하느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도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살펴보면 모든 사람들에게 변함없이 그리고 끊임없이 내리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좁은 소견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사랑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것이 한탄스러울 뿐입니다.
이제 우리들의 삶을 가다듬고 우리들의 생각을 가다듬어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닮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뜻과 마음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그 모양대로 우리들도 비록 미약하지만 예수님의 무한하신 도움에 힘입어 내 마음 속의 원수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는 완전한 사랑에로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였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