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로마 성녀 아녜스 성당의 아녜스 성녀 상>
"군중이 다시 모여들어 예수님의 일행은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다."(마르코 3, 20)
오늘 축일을 지내는 아녜스 성녀는 성녀 아가타, 성녀 체실리아, 성녀 루치아와 함께 초대 교회의 4대 동정 순교자 중의 한분입니다. 축일을 맞이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전설에 의하면, 3세기 말 로마 귀족의 딸이었고, 뛰어난 미모의 소녀였던 아녜스는, 그곳 시장 아들로부터 청혼을 받았지만 주님께 동정 서원을 했기에 구혼을 단호히 거절했다고 합니다. 이에 시장 측에서 앙심을 품고 조사를 한 결과 그리스도교 신자임이 밝혀져 동정과 신앙을 버리도록 온갖 유혹과 고통을 다 당했습니다. 불 속에 던져졌으나 타지 않았고 오히려 그 속에서 주님을 찬미하였으며, 음란한 마굴에 던져졌으나 어떤 불한당도 천사 같은 그의 몸을 범접하지 못했습니다. 결국은 무서워 떨며 내려치는 희광이의 칼을 웃으며 받은 아녜스 성녀는 13세의 어린 나이로 꽃다운 목숨을 바쳐 주님 제단의 어린양이 되었습니다. 아녜스 성녀는 죽었지만 그의 이름은 신자들 가슴에 지금도 살아 빛나고 있습니다.
목성의 많은 위성 중에 '에우로파' 라는 위성이 있다고 합니다. 크기는 달과 비슷한데, 특이한 것은 이 위성의 표면이 100Km의 얼음으로 덮여 있다고 합니다. 달은 운석이 많이 부딪히기 때문에 표면이 곰보처럼 많은 상처가 있지만, 에우로파는 당구공처럼 표면이 매끄럽다고 합니다.
운석이 다 비켜가서 일까요? 그게 아니라, 운석이 부딪히면 열이 발생하고, 그 열로 인해 얼음이 녹고, 그러고 나서 다시 얼음의 냉기로 인해 얼음으로 변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운석이 부딪혀도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하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목성의 위성인 에우로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랑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
사랑이라는 단어. 아마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단어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가지고, 받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이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랑 때문에 상처를 갖게 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음을 봅니다. 그래서 아파하고, 힘들어 합니다. 특히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는 않는 경우, 또는 그 사랑을 역이용했다는 느낌이 들 때면 정말로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사랑하면 상처가 생긴다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이 점을 두려워해서 정말로 우리가 해야 할 일,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아픔, 상처는 마치 얼음별 에우로파처럼 스스로 치유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무척이나 바쁘신 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음식을 드실 틈도 없었다고 복음은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그저 예수님께서 바쁘게 사셨다는 의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당신의 식사 시간도 이웃을 위해 포기하는 모습을 강조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예수님께서는 많은 고통을 체험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식사를 못하는 것은 뒤로 하더라도,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듯이 십자가상의 죽음까지도 체험하시게 됩니다. 또한 이런 고통을 당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던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랑을 강조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사랑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랑함으로써 겪게 되는 일차적인 아픔과 상처는 앞서도 말씀드린 얼음별 에우로파처럼 스스로 치유되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사랑 실천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나는 지금 바빠서 사랑 실천을 할 여유가 없다고 거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또한 사랑함으로써 겪게 되는 아픔과 상처가 싫어서 사랑해야 되는 순간에 모른 체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예수님처럼 사랑을 위하여 나의 작은 것을 포기해보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사 랑을 위하여 성녀 아녜스처럼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기는 용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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