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갈릴래아 지방 게라사(쿠르시) 지역>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마르코 5, 17)
복음은 예수님이 묘지에서 살고 있는 더러운 영에 들린 사람을 만나 그 악령들을 돼지 떼로 몰아내고, 돼지 떼들은 모두 바다에 빠져 죽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악령들은 인간 사회에서 살지 못하고 묘지에 살고 있다가 겨우 돼지 떼에 들어가서 살게 되었지만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악령'이나 '무덤'은 어둡고 부정적인 악을 상징하며, 성경에서는 이 돼지 떼 역시 부정한 동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결국 악은 스스로 자멸하게 되고, 악령이 들렸던 사람은 다시 인간 사회로 되돌아오게 되는 것을 오늘 복음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두 가지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는, 자기들이 치던 돼지들이 모두 바닷물에 빠져 죽자, 이제 자기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자기들의 마을을 떠나달라고 청하는 마을 사람들의 이기심입니다. 악령으로 힘들어하는 그 사람을 악령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었건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익 때문에 예수님을 거부하는 어떻게 보면 아주 버릇없는 행동을 취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모습은 어떠한지요? 복음에 나오는 그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 스스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무조건 하느님께 청하는 모습, 또한 나의 뜻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트리는 모습, 나의 이웃을 생각하기보다 나의 이익을 생각하면서 하느님께 기도하는 모습, 이런 모습들이 복음의 마을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복음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대로 오늘 복음 안에서 예수님은 또 다시 당신의 신적인 능력을 즉, 당신이 하느님다운 능력을 가지고 계심을 드러내셨습니다. 그 능력은 바로 가련한 사람,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즉, 치유를 받은 후에 더러운 영에 들린 사람은 옷을 단정히 입고 제정신이 돌아와서 앉아있습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매우 놀라워하였습니다.
그런데 치유를 받은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머무르고자 하나 예수님은 이를 거절하시고 가족들과 친척들에게로 그 사람을 보내십니다. 자신의 치유를 그들에게 알리라고 당부하시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다른 지방(데카폴리스 지방)까지 가서 예수님에 대해 선포합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고 복음은 전합니다.
아마도 내가 예수님의 입장이었으면 "음... 그래? 그럼 같이 살아보자!"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 사람을 거절하면 그 사람이 얼마나 서운할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래서 “안 됩니다.”라고 말하기가 두려운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분명하게 "안 됩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을 통해 당신이 행하신 일 그리고 자신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자비를 가족과 친척들에게 알리는 것이 우선 이라고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그 결정은 그 사람을 복음의 선포자로까지 만듭니다. 그분의 "안 됩니다!"는 단순한 거부가 아닌 다른 목적을 위한 하나의 권고였던 것입니다.
“예” 것은 “예”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할 수 있는 용기는 바로 목적이 뚜렷했을 때 가능한가 봅니다. 난 무엇을 위해 “예”하고 무엇을 위해 “아니요.” 할 것인가? 오늘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