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갈릴래아 지방 벳사이다>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마르코 8, 21)
세상을 살아가면서 걱정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내가 하는 걱정이 올바른 것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쓸모 있는 것인가요? 아니면 쓸데없는 것인가요? 쓸모 있는 걱정이라면 좋겠지만 쓸데없는 것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여기서 쓸데없는 걱정은“예수님의 뜻을 생각하기 전에 나의 뜻을 먼저 생각하는가?, 왜 내게 편한 것만을,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만을 받아들이려 하는가?”라는 생각에서 오는 것입니다.
어떤 어부가 고기를 잡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슬피 우는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부가 조심스럽게 가보니 악어와 개구리가 함께 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부는 악어에게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너는 왜 그렇게 슬프게 울고 있니?” 악어가 어부에게 대답하기를,
“어제 용왕이 명령이 내렸는데 꼬리 달린 족속들은 모두 죽인다고 합니다. 나는 악어인지라 죽음이 두려워서 이렇게 웁니다.”
어부는 악어의 이야기를 듣고 이번에는 개구리에게 물었습니다.
“악어는 꼬리가 있기 때문에 우는데, 개구리 너희들은 꼬리도 없는데 왜 울고 있니?”
개구리들이 대답하였다.
“우리 개구리들이 지금은 다행히 꼬리가 없지만 용왕이 올챙이였을 때를 문제 삼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울고 있습니다.”
개구리의 걱정들은 바로 쓸데없는 걱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과거의 잘못된 것을 뉘우친 후 다시 기억하여 죄책감에 빠질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지난 일에 얽매여 산다면 그것은 분명 아직 뉘우침의 결단이 없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렇게 개구리처럼 쓸데없는 걱정으로 아직도 과거를 움켜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과거의 일이 교훈이 되는 것은 마땅합니다. 그러나 과거를 끌어안고 괴로워하는 것은 새로운 기쁨을 맛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쓸데없는 걱정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예수님께서는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직접 목격한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지만, 그들은 빵이 없다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를 가지고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과, 빵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이 사실을 새까맣게 잊어 먹고서는 지금 당장 자신들이 먹을 빵이 없다고 걱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이들은 지금 당장 겪게 될 굶주림만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한심하다는 듯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우리 삶 안에서 기적 아닌 것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손길을 매 순간 느낄 수 있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쓸데없는 걱정을 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의 나를 보시고 어떤 말씀을 하실 것 같은가요? 혹시 오늘 복음에 나오시는 그 모습으로 혀를 차시면서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걱정까지도 예수님께 맡겨드리는 모습. 그 모습이 예수님께서 가장 원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지금 내가 안고 있는 걱정을 훌훌 털어 버릴 수 있는 삶이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라고 합니다. 걱정의 22%는 사소한 고민이라고 합니다.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라고 합니다. 마지막 걱정의 4%는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안고 있는 걱정은 어디에 포함되어 있는지요? 만일 마지막 4%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그 걱정을 예수님께 맡기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