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리아 필립피 전경>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마르코 8, 29)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누군가? 그분은 어떠한 존재인가?에 대한 물음과 베드로의 고백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복음 전파 시초부터 많은 이들에게 말씀과 기적을 베푸시고 제자들을 택하여 가르쳐 왔지만, 이제 예수님 당신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사람들이 어떻게 알아듣고 있는지 시험해 보지 않으면 안 될 시간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 자신이 진실로 어떠한 사람인지를 발견한 사람이 있는가를 알아보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당신 스스로 사람의 아들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 가운데서 생활하시고, 가르치시고, 기적을 베푸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자신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한 사람이 없다면 예수님의 활동은 허사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강요가 아니라 자유를 가진 사람들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고도 꾸밈없이 우러나오는 대답을 듣기 원하시며 사람들이 예수님 당신 자신을 누구라고 하더냐고 제자들에게 물어보십니다. 그런 물음에 제자들은 일반적인 소문 그대로 세례자 요한, 엘리야, 예언자 중의 하나라는 보고를 합니다.
그러한 보고를 들으신 다음 얼마쯤의 침묵이 흐릅니다. 그러한 침묵을 깨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러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대하면서 항상 느껴 왔던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습니다. ‘이분은 메시아, 그리스도, 기름 부음을 받은 자, 하느님의 아들이구나!’ 그래서 베드로는 스승님은 그리스도십니다!하고 자기 생활 속의 삶의 고백을 예수님께 한 것입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대답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자기의 가르침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신하십니다.
그러나 뒤이어 예수님의 말씀 속에 무엇이 뒤따랐는가요? 사람의 아들이 장차 많은 이들에게 배척을 받고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죽으리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러한 말씀에 베드로는 펄쩍 뛰며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만류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혹독한 말마디인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하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성경 말씀 속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무엇을 알아들어야 하겠습니까? 제자들이 예수님과 알고 지낸 것처럼 우리는 어려서부터 하느님을 알아 왔고, 또 누구는 몇 년 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믿음의 생활을 해왔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믿음의 생활을 통해서 내 생활 속에, 내 삶 속에 진정 예수님을 누구라고 여기며 무슨 관계, 무슨 인연이 있다고 고집할 수 있는가요?
또한 ‘그리스도’라고 베드로처럼 고백할 수 있다고 해도 베드로가 생각하고 기대했던 세상의 행복을 위한 정복자로서의 메시아의 모습을 원하는가요? 아니면 그리스도께서 당신 스스로의 신원과 역할을 말씀하시듯이 고난을 당하고 바보스럽게도 십자가에 처형되시는 그러한 그리스도임을 고백하고 있는지요?
그리하여 그분의 삶을 본받아 그를 뒤따르고 있는지, 우리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일 성숙하게 그 질문에 대답을 못할 때 마지막 그때 가서 난 몇 갑절의 보상을 그분께 드려야 할 것임을 기억하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