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독도 일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요한 1, 28)
이번 주간은 주님 공현 대축일을 준비하는 주간으로 지내게 됩니다. 공현이라는 말은 공식적으로 드러난다는 한자의 의미 말고도,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분이 그 사명을 알아보는 사람들 앞에 모습을 보여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전례에서는 공현의 모습을 3 가지로 말합니다. 역사적인 순서로 구별하여 보면, 동방박사들에게 모습을 보이신 일,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 받은 일, 가나 혼인잔치 집에서 기적을 베푸신 일이 그 세 가지입니다. 각각은 서로 다른 모양을 띠고 있지만, 그 의미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나게 커다란 작용을 하는데 비해서, 거부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삶의 걸림돌이요, 장애물이 될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여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하는 우리가 갖는 자세도 어떤 것인가에 따라 구세주 하느님을 기다린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 주지 않는다면,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더라도, 내심 서운한 마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자신을 알아 주지 않을 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자신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과대평가와 과소평가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평가를 놓고 반응하는 태도는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로부터 과대평가를 받을 때 조금은 쑥스럽지만 내심 좋아하면서 말할 겁니다. “난,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잘난 놈이 아니야.”라고. 그러면 상대방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어쩜, 겸손하기도 하지.”라고. 이 정도가 되면 자신의 부족함을 용기 있게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니 어쩌면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를 시정하려다 겸손한 이미지까지 덧붙여진 것을 즐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과소평가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양상은 달라집니다. 인내심 있는 사람이라면 “뭐 그럴 수도 있지. 언젠가는 나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될거야.” 라고 생각하며 넘어가겠지만, 성격이 좀 급한 사람이라면 “넌 나에 대해 잘못 알고 있어!”라고 그 자리에서 집고 넘어갈 것입니다. 심하면 의가 상해 완전히 갈라지기도 합니다.
사람은 있는 그대로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을 지니고 있기에, 하느님으로부터 고유의 사명을 받았고 하느님과 함께 하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낼 때에 사람은 비로소 아름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들로부터 주어진 인상이나 느낌, 평가를 자신의 편의에 따라 때로는 내팽개치고, 때로는 적당히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을 감출 때 사람은 추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참으로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누군지 알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과대평가를 과감하게 떨쳐내었던 용기 있는 사람,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아니어도, 엘리야나 다른 예언자가 아니어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자신을 옹호하던 이들의 태도가 돌변하여 “그러면 당신이 왜 세례를 베푸는 거요?”라고 비아냥거려도 상관이 없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로서의 자신의 삶을 사랑했고 그런 만큼 소중하게 품어 안은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로부터 싫든 좋든 나에 대한 느낌, 생각, 평가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 순간순간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당당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그것이 비록 나를 깎아 먹는 것이라 해도, 이렇게 나를 깎음으로써 오히려 나는 더욱 소중한 예수님의 일꾼이, 아름다운 예수님의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나를 깎고 깎아 더 이상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그럼으로써 더욱 더 예수님께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