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갈릴래아 지방 빵의 기적 성당 외부 전경>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요한 1, 34)
지난 주일 우리는 주님 공현 대축일을 지냈습니다. 예수님의 공현은 3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동방의 박사들에게 당신을 드러낸 것이고, 두 번째는 당신의 세례를 통하여 보여진 하늘의 소리를 통하여 드러낸 것이고, 세 번째가 카나라는 동네의 한 잔치 집에 초대 받아서 물을 술로 바꾸었다는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 이야기라고 신학자들은 말합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은 이 일로써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고 말합니다. 하느님의 아들로 당신의 모습을 보여 준 공현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겨울은 겨울다워야 하고, 겨울은 좀 추워야 겨울의 맛이 난다고 하는데, 요즘 겨울의 맛이 나는 그런 날들이 계속 없다가 지난 주간에는 정말 겨울다운 맛이 나는 날이었습니다. 겨울에는 얼음도 얼고, 고드름도 달리고, 눈도 내리고 매서운 바람에 발을 동동 구르는 그런 맛이 있어야 겨울답다고 할 것입니다.
TV를 보면 매년 얼음을 깨고서 그 밑으로 수영복만 입고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좀 무모해 보였지만, 겨울의 추위를 온 몸으로 받아내는 그 기백은 참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하기를 왜 우리는 부딪쳐 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경우가 있는가? 입니다.
사랑한다는 말도 못해 보고 쓸쓸히 뒤돌아서는 나약한 젊은이도 있고, 나는 못해,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하느냐고 겁부터 먹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신의 권리와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사람도 있는 반면, "좋은 것이 좋은 것이야!"라고 하면서 뒤에서 타협하고, 야합하고, 합리화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차피 넘어야할 산이라면, 어차피 건너야 할 강이라면, 어차피 부딪쳐야 할 사람이라면 가슴을 쫙 펴고, 당당하게 부딪칠 수 있는 용기와 기상이 필요할 것입니다.
어떤 본당에 정말 엄하고, 까다로운 본당신부님이 계셨습니다. 사목위원들도 가까이 하지 못하고, 수녀님들도 이야길 잘 못하시고, 보좌신부도 눈치만 보는 그런 성당이었습니다. 물론 야단치시고, 하나하나 따지시는 본당신부님을 감당하기가 어려운 점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본당은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하고,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참다운 신앙 공동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새해에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삶의 자리에서 좀 더 당당할 수 있는, 좀 더 진실 할 수 있는, 좀 더 활기찬 그런 신앙생활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아주 당당한 사람 한 분을 소개 합니다. 바로 세례자 요한입니다. 그분읜 구세주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증언합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저분이 비록 나에게 세례를 받으셨지만 저분은 세례를 받으실 필요조차 없는 분이셨음을 고백합니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이다.”라고 소개하며 자신이 물로 세례를 베푸는 이유를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게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런 모든 것을 종합해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자신이 증언한다고 말합니다. .
자신이 그 동안 쌓아놓은 모든 것들이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곁을 떠날지도 모르는데, 이제 어쩌면 자신은 외톨이가 될지도 모르는데,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자존심이 상할지도 모르는데 그런 모든 것을 개의치 않고 세례자 요한은 당당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참 멋있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에서 또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사도 바오로입니다. 그 역시 능력으로나, 학력으로나, 신분으로나, 전혀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오로”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표현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몇 명에게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하느님의 구원이 땅 끝까지 다다르도록, 만국의 빛이 되어”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당신의 편지 여러 곳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나는 한없이 작아져야 하고 그분은 점점 커져야 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분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에게 도움을 줍니다. 이제 그분은 내생의 전부입니다.”
이분들은 자신의 욕망과 자신들의 욕심을 포기하는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이분들은 자신들의 삶에 다가오는 폭풍과 파도를 두 눈을 크게 뜨고 당당하게 맞이하였습니다. 이분들은 영원한 것을 위해,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을 포기할 줄 아는 지혜와 용기를 지녔습니다.
벌써 새해가 시작 된지 보름이가 흘렀습니다. 아직도 주저하는 일이 있다면, 아직도 타성에 젖은 일이 있다면, 아직도 버리지 못한 것들이 있다면, 이 추운 겨울 당당하게 맞이하듯이 좀 더 당당하게, 좀 더 용기 있게, 좀 더 활기차게 이겨낼 수 있도록 하느님께 청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세례자 요한이나 바오로 사도가 되어 하느님의 가르침을 가슴 속에 새겨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참된 신앙인이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이런 마음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오늘 화답송의 후렴이 나의 신앙고백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