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라엘 베들레헴 대성당 내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장소 - 14각 별로 표시되어 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 14)
이 세상의 어둠을 밝히고 모든 사람들을 참 빛으로 비추시기 위하여 우리 에게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 모두와 우리의 가정에 아기 예수님의 축복과 은총이 늘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이 말씀은 모세와 더불어 시작한 율법의 시대는 가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총과 진리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선포입니다. 예수님의 삶 안에 우리를 위한 은총과 진리, 곧 하느님의 은혜로우심과 우리가 배워서 살아야 하는 삶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모세가 사람들에게 율법을 준 것은 함께 계시는 하느님과 더불어 사람이 자유롭게 살도록 하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모세가 깨달은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었습니다. 하느님이 함께 계시기에 그분의 일을 실천하며 살라는 지침이 율법이었습니다. 그것은 은혜로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율법을 인간 자유를 보장하는 지침으로 생각하지 않고, 인간 자유를 제한하며 인간이 인간 위에 군림하는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율법학자들은 율법으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사람들은 노예와 같이 율법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만 축복하시는 하느님이라 믿었습니다. 그들에게 더 이상 하느님은 은혜로우신 분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자유롭지 못한 때가 많습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은 우리의 자유를 빼앗아갑니다. 강자 앞에서 비굴하고 약자 앞에서 강하면 우리는 자유롭지 못한 사람입니다. 불행을 당하거나 불의한 일을 당한 이웃을 보면서 아파하지도 않고, 분개하지도 않으면서, 자기가 그런 피해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행으로 생각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자유롭지 못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것이 참다운 인간 자유가 아니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 하느님은 선하신 아버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아버지의 생명을 받고 살아서 참된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선하심을 실천하여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가진 것을 모두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시오."(마르 10,21)라고 말입니다. 가진 것을 베풀어서 베푸신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남의 것을 등쳐먹은 일은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루가 19,8)라고 말하는 세관장 자캐오의 의지를 보고 예수님은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재물은 많이 만들어 쌓아놓고 즐길 때 인간이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나누고 베풀어서 하느님의 선하심을 실천할 때 인간은 자유롭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받은 자유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사람 위에 군림하지 않고 서로 섬기며 사는 자유로운 세상을 원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에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 10,44-45) 섬김이 인간이 인간답게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이라는 말씀하십니다.
복음서 안에 반복되는 "당신의 죄는 용서받았소."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인간 죄에 대한 벌로 불행을 주시지 않는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일깨워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들이 죄인으로 낙인찍어 놓고 기피하는 이들과 함께 어울려 먹고 마시는 행동을 통하여, 용서하시는 하느님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느님이 용서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도 그 용서를 실천하여 아버지의 자녀 되어 살라고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용서는 인간이 형제자매 되어 사는 데 필요한 연결고리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지내면서 오늘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과연 은혜로우신 분인지?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분 안에 보는 진리가 무엇인지도 물어보아야 합니다. 믿어서 구원받고, 믿지 않아서 버림받는다고 생각하면,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거룩하지도 은혜롭지도 않으신 분입니다. 많이 바치고 많이 받아내는 것이 신앙의 진리라 생각하면, 하느님은 거룩하지도 은혜롭지도 않으신 분입니다. 특정인에게 권한과 지위를 주시는 하느님이시라고 믿는다면, 하느님은 거룩하지도 은혜롭지도 않으신 분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다.". 오늘 복음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지상 삶에서 우리 삶을 위한 빛을 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자유를 배워서 섬기고, 사랑하고,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받아들여 하느님의 자녀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그들은 하느님에게서 난 것이다."
오늘 한 생명의 탄생을 우리가 기억하고 기뻐하는 것은 우리가 그분에게서 새로운 자유와 새로운 세계를 배우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당신의 삶으로 그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삶 안에 진리로 살아 계십니다. 신앙은 먼저 은혜로우심에 대한 깨달음이고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일을 배워 실천하는 노력입니다.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생명의 탄생을 기념하며 기뻐하는 오늘이 되어야 하고 주어진 오늘을 하느님의 은총 속에서 그렇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탄생이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신" 예수님을 기리는 참된 의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