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함브르크 어느 성당 제대 전면 스테인드 글라스>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이 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는 죄명 패가 붙어 있었다."(루카 23, 38)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이며 그리스도 왕 대축일입니다.
'王'이란 글자의 의미는, 맨 위의 획은 하늘을 나타내고, 맨 아래 획은 땅을 나타내고, 중간 획은 사람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그래서 '왕'(王)이란 하늘과 땅과 사람을 이어 주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늘을 땅으로 내려오게 하고, 땅을 하늘로 올라가게 하며, 남남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서로 이어 주는 사람을 뜻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해 보면, '하늘을 땅으로 내려오게 한다.'는 것은 하늘의 뜻을 땅에 실현하는 사람을 의미하고, '땅을 하늘로 올라가게 한다.'는 것은 땅의 소망과 기원을 하늘로 올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남남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서로 이어 준다.'는 것은 다리와 구심점의 역할, 곧 '한데 모이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이 '왕'(王)이란 글자의 본질적인 의미입니다. 이것이 바로 왕답게, 왕 노릇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랜 역사가 흐르는 동안 이 세상에는 수많은 왕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중에는 백성을 위해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았던 왕들도 있었고, 반대로 자신의 이기심과 욕심만을 채우기 위해 백성들을 착취하고 억압한 왕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왕들은 하늘의 뜻을 땅에 실현시키고자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자신의 권력을 하늘처럼 쌓기 위해 땅을 이용했고, 땅의 소망과 기원을 하늘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 땅의 소망과 기원을 불의한 폭력으로 억누르고 지배했습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다리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갈라놓고, 적이 되게 하고, 서로 죽이고 이겨야만 살 수 있는 살벌한 전쟁터가 되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왕들 가운데에는 왕이 무엇인지도, 왕이 어떤 사람인지도, 왕이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왕 노릇한 이들도 많았습니다. 그 결과 역사는 왜곡되고 굴절되고 갈가리 찢기고, 세상은 더욱더 어지러워지고 갈수록 막막하고 희망도 없어졌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왕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왕 노릇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폭력적인 억압과 지배, 분열과 이기심, 경쟁심을 조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왕 중의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어떠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근본적으로 "이 세상의 지배자들은 사람을 강제로 내리누르고 억압한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王'이란 바로 섬기는 사람, 백성을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王'이란 글자를 유심히 살펴보면, 하늘과 땅과 사람을 이어 주는 것은 다름 아닌 '十(십자가)'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참다운 왕은 바로 십자가의 왕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참다운 왕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입니다. 처참하게 십자가에 처형되신 십자가의 예수님께서 바로 우리의 참다운 왕이십니다.
예수님과 같은 왕을 여러분은 본 적이 있는가요? 실패한 왕, 교수형에 처해진 왕을 우리는 우리의 위대한 왕으로, 참다운 유일한 왕으로 모시고 있는데 과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삶이,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삶이, 예수님께서 살아가신 삶이 궁극적으로 이 세상을, 우리를 해방시키시는 삶이었고, 우리에게 영원한 자유와 기쁨을 주는 삶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더욱 인간답게 행복과 기쁨과 사랑을 나누며 다정하게 살 수 있는 길은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고 예수님께서 직접 사신 그 삶뿐임을 우리가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한마디로 섬기는 삶, 사랑의 삶, 철저하게 자신을 이웃에게 내어 주는 먹히는 삶이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왕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에 의해서 십자가에 처형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사신 그 삶, 섬김과 사랑으로 먹혀지는 삶, 그 내어 줌의 삶은 결코 죽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바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리이며, 우리가 가져야 할 생명입니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왕 중의 왕, 우리의 참다운 왕이십니다. 하늘의 뜻을, 하느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시키는 왕이요, 해방과 자유와 기쁨과 사랑을 이 땅에 실현시키는 왕이요, 땅의 소망과 기도를 하늘로 올리는 왕이며, 사람과 사람을 사랑의 끈으로 묶는 왕이십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는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모신다는 말은 우리도 예수님처럼 살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신 삶을 그대로 닮아서 살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고 자신을 이웃에게 내어 주는 먹히는 삶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이 바로 우리를 참으로 인간답게 만들어 주고,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줌을 확신한다는 말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지 못할 때 예수님을 보고 우리의 왕이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 됩니다. 허울 좋은 가식일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실로 하느님의 진리를 위해 살아갈 때, 곧 섬김과 사랑과 자신을 내어 주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며,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는 사람이 됩니다.
과연 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실로 여러분의 왕이신가요? 참으로 예수님께서 여러분 자신을 온전히 지배하고 계신 왕이신가요? 혹시나 재물이, 물질적인 가치들이 여러분을 지배하고 있지는 않는가요? 그것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삶을, 우리가 살아가야 할 그 길을 가볍게 취급하지는 않는가요? 진실로 예수님의 말씀과 삶이 여러분 삶의 모든 순간을 지배하고 있는가요? 예수님 때문에 남을 섬기는 마음이,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에게 내 자신을 내어 주고 싶은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고 있는가요?
바오로 사도는 아름답게 예수님께서 자신의 왕이심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필립 1,21).
대림 시기가 곧 시작됩니다. 왕으로 오시는 가난하신 예수님, 자신을 몽땅 내어 주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서로 사랑하며 서로 섬기며 자신을 낮추어 이웃에게 내 자신을 내어 주는 삶을 살아갈 때 사랑 때문에 가난하게 오신 우리의 헐벗은 왕을 잘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왕이 되고 싶은 사람도 많고, 실제로 왕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도 많은데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듣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진정한 왕이심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듣는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