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순교 성인 103위 성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 23)
오늘은 한국의 103위 성인을 공경하며 그 덕을 기리는 대축일입니다. 우리나라에도 가톨릭교회의 성인으로 선포되고 전 세계 신자들의 공경을 받으시는 성인들이 계심을 생각할 때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인”이 되셨다함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완성의 경지에 도달했음을 말합니다.
각 종교에는 그 종교의 가르침과 이상을 실현한 이상적 인간이 있스빈다. 유교에서는 ‘군자’(君子), 불교에서는 ‘아라한’(arahat)이나 ‘보살’, 도교에서는 ‘신선’내지 ‘도인’(道人)이라는 말로 불리는데, 이들 각 종교의 이상적 인물은 그 나름대로 인간의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성인’이 된다는 것도 바로 그리스도교의 이상적 인물이 되었다는 것이며, 하느님의 마음에 흡족한 상태의 경지에 도달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우리는 과연 그 이상적 인물에 도달한다는 것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지 노력을 하고 있는지요? 아니면 나는 도저히 불가능하기에 처음부터 그러한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되는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만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인은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지만, 또한 누구나 그 가능성은 다 지니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성인이 될 수 있는 씨앗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누구에게나 이 씨앗은 주어져 있습니다. 다만 이 씨앗을 어떻게 가꾸어 가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성인 되는 길에 대하여 성경의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통해서 묵상해 봅니다. 예수님은 복음의 씨를 사람들의 마음 밭에 뿌릴 때, 길바닥, 돌밭, 가시덤불밭, 좋은 밭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루가 8, 4-15). 씨가 어느 곳에나 떨어지듯이, 성인이 될 수 있는 하느님 말씀도 여러 형태의 사람들의 마음 밭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길바닥에 떨어진 것은 말씀을 듣기는 했지만, 악의 세력에 휘말려 그 말씀을 빼앗기고 믿음도 생겨나지 못하는 것이며, 돌밭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뿌리를 내지 못하여 그 믿음이 오래가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가시덤불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기는 했지만 살아가는 동안에 세상 걱정과 재물과 현세의 쾌락에 눌려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좋은 밭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받아들여 착한 마음으로 꾸준히 열매를 맺은 것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200여년의 교회사를 보면 이러한 네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국 땅에도 복음의 씨가 중국으로부터 날라 왔습니다. 그 씨는 책의 형태로 조선시대의 우리 선조들에게 파종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상태는 예수님의 비유처럼, 길바닥, 돌밭, 가시덤불밭, 좋은 밭의 형태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사에 있어서 교회창설 후 100년간에 걸친 박해의 과정에서 복음의 말씀을 듣자마자 그것을 길에 버린 이들이 있었고, 혹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거나, 박해의 칼날 앞에 배교한 이들도 있었고, 혹은 천주교 신자를 밀고하거나 적극적으로 박해에 가담한 이들도 있었습니. 그러나 좋은 땅에 떨어져 신앙의 꽃을 피우고 순교의 열매를 맺는 이들이 1만명을 헤아리고 있습니다. 그중 103위 성인은 모두 순교의 꽃을 피우고 자랑스럽게 신앙의 열매를 맺은 분들입니다. 한국의 103위 성인은 모두 순교의 영광을 받고 성인품에 오르신 것이 공통적이지만, 그들이 성인품에 오르기 전 성인이 되는 과정에 있어서 그 길은 다양했습니다. 그분들의 출신성분은 참으로 다양했지만, 공통적인 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복음의 말씀을 소중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여 자기들의 마음 밭에서 성장하도록 했고 마침내 순교의 열매를 맺었던 것입니다. “아무나 성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성인이 될 가능성은 있는 것이다.” 바로 우리 한국의 신앙선조들이 그 찬란하고 훌륭한 성인의 길을, 그리고 그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성인이 되기 위하여 한국 순교 성인들의 신앙을 본받아 “나 야훼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자 되어라.”(레위 20, 26)하는 하느님의 초대에 응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완전한 자 되어라.”(마태 5, 48)하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권고를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이제 이 시대에 요구되는 신앙증언과 신앙생활로 그리스도교의 이상적 인물이며 목표인 “성인의 길”을 따라 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인이 되는 길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그 길을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루가 9, 23). 그리고 제1독서인 지혜서에서는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지혜 3, 6) 고 말씀하십니다. 성인은 바로 이러한 길을 가신 분들입니다. 우리나라의 순교성인들은 모두 자신을 버리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랐으며, 또한 그 신앙을 고난의 용광로 속에서 견디어 내고 극복한 것입니다. 이분들은 성인이 되시기까지엔 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었으며, 또 어떠한 분도 고난 없이 성인이 되신 분은 없습니다. 한사람 한사람마다 신앙의 시련을 겪으셨고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자기 생명을 바치심으로써 그 신앙을 증거해야 하는 관문을 통과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순교 성인들의 이러한 신앙 정신을 생각하며 우리의 신앙 상태를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오늘날의 우리의 신앙생활은 과거 박해시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편리하고, 쉽게 미사에 참여할 수 있고, 성사를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사에 빠지거나 성사도 보지 않고 냉담 상태로 지내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그리고 교회에서 맡기는 봉사직을 여러 가지 이유를 내세워 기피하거나, 혹은 맡았다 해도 적극성과 책임성을 보이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비방이나 하지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교회의 봉사활동, 그리고 여러 가지 형태의 책임 맡은 일들에 대한 성실한 이행 등 바로 이런 것이 오늘날 우리시대에 요구되는 순교 신앙 선조들의 후예들이 해야 할 자그마한 일들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 순교 성인들이 이 시대에 사셨다면 그분들은 교회를 위해 그리고 자신의 신앙을 위해 자신에게 맡겨 주시는 일을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하셨겠습니까? 우리는 오늘 우리 한국의 103위 성인 대축일을 맞아 순교 성인들의 후손임을 자랑만 할 것이 아니라, 이분들의 순교 신앙정신을 본받으며,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지는 주님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갈 수 있는 신앙정신을 다짐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아무나 성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성인이 될 가능성은 있는 것이다.”를 알려주신 순교 성인들에게 감사드리며 아직도 이런 공경의 품에 오르지 못하신 한국 순교자들의 시성시복을 위해 기도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