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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꽃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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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꽃자리
  1. 삶의 꽃자리


연중 제 26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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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프라이브르그 성문>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없고 나무랄데 없이 계명을 지키십시오."(티모테오1서 8, 14

사람 팔자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인간 세상의 행복과 불행은 수시로 바뀝니다. 요즈음 신문과 방송을 보면 온통 비리와 부정에 연루된 사건들로 가득해서 짜증이 나고 화가 납니다. 모두 행복은 재물로부터 온다는 논리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저지른 정말 웃지못할 사건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늘의 성경 말씀은 부자들과 가진 자들에 대한 경고이자 부정부패를 일삼는 자들에 대한 질책이고 못 가진 자들, 헐벗은 자들, 소외된 자들에 대한 축복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재물에 눈이 어두워 자기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고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현대인을 겨냥한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재물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안전지대인가요? 그렇지 않음을 오늘 독서와 복음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1독서는 아모스 예언자의 말씀입니다. 아모스 예언자 당시의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게 되자 오만 방자해져서 하느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모든 것들을 자기들의 공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거기에다 그들은 하느님보다 세상을, 이웃이나 형제보다 재물에만 의지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백성에게 아모스는 하느님께로 돌아가도록, 재물보다 하느님을 섬기도록 경고하고 근원적인 선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2독서는 사도 바오로는 디모테오가 하느님의 일꾼답게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충고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은 신앙에 충실하고 신자들에게 덕행으로 모범이 되고 어떠한 세속적 권세와 이익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이승에서의 부자와 거지 라자로의 삶이 저승에서는 완전히 뒤바뀐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이승에서 부자는 호화로운 삶을 영위하지만 반면 거지 라자로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로 주린 배를 채워야 하는 비참한 삶을 삽니다. 그러나 저승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거지 라자로는 아브라함 품 안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한편 부자는 죽음의 세계에서 고통을 당합니다.

참으로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과연 부자의 잘못이 무엇인가? 또한 라자로의 선행은 무엇인가?" 성경에는 부자가 악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았다든지, 인색한 구두쇠였다든지 하는 설명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라자로가 비록 가난하더라도 하느님의 계명을 잘 지켰다든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는 설명도 없습니다. 다만 "라자로"라는 이름이 "하느님을 의지하는 자"라는 의미 밖에는 없습니다.

복음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부자의 잘못은 라자로를 괴롭히거나 침을 밷거나 눈을 흘기지도 않았고, 대문 밖에서 쫓아내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그를 돌보지 않고 무관심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재물을 지니고 호사스럽게 살았다는 사실이 죽음 후에도 같은 호사스러움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라자로의 선행은 그럼에도 부자를 미워하거나 시기하거나 질투하진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불쌍히 여기실 근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가난하고 버려진 사람을 아끼신다는 것입니다. 부자는 재물에만 의존하여 행복했습니다. 불쌍히 여김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라자로는 의지할 것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에라도 의존해 보려 했지만 그것도 되지 않았습니다.

부자집 대문간에서 굶주린 라자로는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속이라는 좋은 곳으로 가고, '화사하고 값진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로운 생활을 한' 그 부요한 자는 빈손으로 죽음의 나라로 갔습니다. 이 이야기가 잘못된 일이라고 말하는 바는 라자로가 부자집 대문간에서도 굶주려야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부자는 라자로를 불쌍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오늘 이야기의 비극입니다.

그러면 이 부자는 어찌 가난한 이의 외침에 자기 마음의 문을 닫았을까요? 그것은 "먹을 것을 굶주린 이에게 나눠주고, 떠돌며 고생하는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고, 헐벗은 사람을 입혀주며 제 골육을 모르는 체하지 말라"(이사 58,7)는 하느님의 말씀에 마음의 문을 닫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말씀에 마음을 닫은 것은 재물을 소유하고 모든 것을 다 소유한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현재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사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더라도 웃음과 여유를 갖고 사는 삶입니다. 또한 더 어렵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려는 마음, 곧 재물에 눈이 어두워 이웃과 형제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들의 아픔을 외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함께 나누려는 마음이며 이 마음을 행동에 옮기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어리석은 부자가 되지 말고 나날의 삶 속에서 선행을 실천하고, 우리가 그 동안 주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속죄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는 데 모든 마음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이 세상 안에서 하늘나라를 미리 맛보는 삶이라 할 것입니다.

 


Writer : 송병선 신부   Date. 2016-09-25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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