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신비 5단 : 예수님께서 성체 성사를 세우심.(이스라엘 예루살렘 최후의 만찬 겨행한 다락방)>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 부르셨는데....." (루카 6, 13)
오늘 축일을 맞이하는 모든 분들에게 먼저 축하의 인사를 보냅니다.
성 시몬은 카나 출신으로 혁명당원이었다가 제자로 부르심을 받고, 주로 페르시아 지방에서 선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성 유다는 배반자 유다 이스카리웃과 구별하기 위하여 “타대오”라고 불리기도하는 사도로 신약성경의 유다 서간의 저자로, 주로 유다 지방에서 선교하신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많이 들어서 알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당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뽑은 열두 사도들의 면면을 보면 대체로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부분 "어떻게 저런 사람을?"하고 의아심을 지닐 정도로 의외의 인물들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시몬 역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에는 무력으로 정권을 전복하려던 혁명당원, 다시 말해서 로마 제국의 식민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적극적으로 저항하던 독립군의 일원이자 무장게릴라였습니다. 예수님을 선택하기 전 시몬의 삶은 예수님의 노선인 비폭력주의와는 정 반대 노선인 투쟁일변도의 삶, 정권탈취를 위해서라면 살상까지도 서슴없이 자행하던 삶을 걸어왔던 것입니다. 이런 시몬을 예수님께서는 주저 없이 부르십니다.
예수님이 진정한 스승으로 불리는 이유는 그분이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진리를 지닌 분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제대로 사람을 키울 줄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후계자 양성에 있어서 그 누구도 추종할 수 없는 탁월한 능력을 지니신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이 떠나신 후 제자들에게 남아있었던 길은 오직 고난의 가시밭길뿐이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예수님의 제자란 신분 하나 때문에 갖은 고초를 겪다가 예수님 이상으로 처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제자들이 그토록 참기 힘든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토록 예수님께서 애써 고취시켜주셨던 희망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선택했으면서도 언제나 긴가민가하고 번민하는 제자들을 향해 끊임없이 예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이란 비전을 제시하십니다. "정의는 하느님의 뜻이고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희망", "결코 하느님께서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시리라는 희망"을 고취시켜 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필요한 자세는 사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무리 고되고 험난한 길을 걷더라도 절대로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이 지녀야할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신앙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오히려 죽음이 영원한 생명의 땅으로 건너가는 하나의 과정임을 잘 알기에 죽음이 다가올수록 오히려 죽음을 희망하고 기뻐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사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고통과 시련 가운데서도 무한한 꿈과 영원을 향한 갈망을 지녀야 합니다. 신앙인들은 어떠한 경우라도 실망과 좌절을 이기고 꿈과 희망을 간직해야할 사람들입니다.
살면서 어떠한 일이 있다 하더라고 "이제 그만 이쯤에서 포기하고 싶습니다. 그만 모든 것 내던지고 싶습니다. 이쯤에서 제 삶을 정리하고 싶습니다."란 말을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합니다.신앙인들에게 있어 "살고 죽음"은 취사선택해야할 그 무엇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큰 십자가를 진 삶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살아내야 하고 견뎌내야만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