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암 성지의 늦 가을 단풍>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루카 14, 13)
누구를 초대하는 것도 누구로부터 초대를 받는다는 것도 모두 기분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초대는 늘 자기와 마음이 맞는 이들이거나 나의 필요로 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초대에도 의도된 초대와 일상적인 초대로 구분할 수 있겠지만 서민들의 경우는 일상적인 초대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유명했던 예수님을 초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으리라 생각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행적과 놀라운 설교가 그들에게 위협이 되었거나 그것을 배우려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쁜 속셈을 갖고 초대한 이들과는 어떠한 타협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평범한 우리들처럼 보통 사람들이나 어려운 사람들의 초대를 받았을 때 기꺼이 응하셨고, 선물도 가지고 가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향한 사랑과 축복입니다. 마치 우리가 다른 사람의 집들이 때 세제나 휴지를 사고, 우리의 축복을 갖고 가는 경우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은 늘 그러하듯이 복음에서 우리가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탁을 하십니다. 버려지고 소외당하는 이들, 가난한 이들을 초대하라 하십니다. 그래야 나중에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당신으로부터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은 임금이 출타 중에 왕궁 밖에 쓰러져 있는 한 소년을 치료하고 먹이고 자신의 침상에 누였습니다. 임금의 어머니가 그 일을 임금에게 애기했고, 임금이 마침내 왕비 침상의 이불을 걷었더니 그 자리에 누운 사람은 소년이 아니라 예수님이었다고 합니다. 임금은 화를 내지 않고 엘리사벳 성녀에게 자주 이런 사람을 초대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원하신 것은 바로 이런 초대가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소공동체 모임을 하게 될 때 늘 "예수님을 한 두 분이 기도로서 초대합시다."라고 합니다. 그 자리에 초대를 받으시는 예수님께서 굉장히 기분 좋으실 것입니다. 신자들의 초대를 받으시는 예수님께서는 다른 모습으로 오시는 당신도 초대해 달라고 부탁하십니다.
기도로서 예수님을 초대하고 만나는 것은 굉장히 기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원하시는 초대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초대라고 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예전에 헐벗고 굶주리고 버림받았을 때 예수님의 따뜻한 초대를 받았던 이들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가 사회 속에서, 주변에서 버림받고 계시는 예수님을 찾고 초대해야 할 차례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마음이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권고하는 “그리스도 안에서 뜻을 같이하고 같은 사랑을 지니고 같은 마음 같은 생각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기쁨을 완전하게 해 주는 일”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