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에페소>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루카 21, 28)
이번 한 주간 동안 우리는 독서와 복음을 통해서 종말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예수님의 이 말씀을 나는 어떻게 알아듣고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복음에 나타나는 예루살렘은 큰 상징성을 지닌 도시입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이고,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지이고, 하느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심을 나타내주는 성전이 있는 도시입니다. 예루살렘은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나타내어 주는 도시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대한 멸망의 예언은 곧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셨다는 것, 즉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떠나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떠났다는 말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셨다는 느낌을 받게 해줍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사실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느님으로부터 떠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겉으로는 하느님을 믿고 경배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가르침의 핵심을 잃어버리고 있었고, 신앙의 순수성을 잃고 있었습니다. 즉 그들의 신앙은 형식적인 것이 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에게서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잘못된 신앙생활에 빠지는 것을 바로 잡아주어야 할 사람들이 더 형식적인 신앙에 빠져 있었으니 이스라엘 전체의 신앙이 제대로 서 있었을리가 만무했던 것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죄인들에게는 그 날이 징벌의 날이 되겠지만 의인들에게는 오시는 주님을 뵙기 위해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드는 날”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의 날을 잘 준비한 사람들에게 그 날은 축제와 기쁨의 순간이 되겠지만, 흥청망청 살면서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비극과 혼란의 날이 될 것임을 경고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복음의 경고는 바로 인간은 누구나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을 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도 바로 그러한 파멸을 당하리라는 것입니다. 그토록 사랑을 받고 은총을 받았던 예루살렘도 하느님을 외면하였을 때, 그토록 무서운 벌을 받았다면 우리 자신은 어떠라까요? 이 말씀은 과거에 내가 무엇을 했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현재 하느님과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가 문제인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다 그같이 멸망한다는 말씀 잘 생각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습관적이고 겉치레적인 신앙에 함께 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살아 숨 쉬는 신앙을 원하십니다. 살아있는 신앙이란 나의 삶과 신앙이 하나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형식적인 신앙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실제 생활 안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여야 합니다. 기도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엄청난 비극과 혼란의 날을 피하는 길이 될 것이고, 축제와 기쁨의 날을 준비하는 우리의 자세인 것입니다.
전례력으로 한해의 마지막 시기, 날마다 집착을 떨치는 우리의 나날이 되면 좋겠습니다. 안일함와 편리함에 길들여진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다시금 과감히 길 떠나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가을 산을 빨갛게 물들이는 단풍들의 축제는 과감히 초록을 벗어버리는 수목들의 아픔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진리를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세계,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지니고 있던 낡은 세계관과 가치관을 벗어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아까워하고 미련을 가지는 한 결코 새로운 길을 갈 수 없음을 알기에 미련 없이 지닌 바를 나누고 떠나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