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교구 수서동 성당>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 36)
사람들은 결혼 생활을 오래하면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소위 권태기라는 것을 느낀다고 합니다. 물론 안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런 권태기의 모습은 현재의 삶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 첫 마음을 잃어버릴 때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 안에서도 같은 모습 즉 권태기를 볼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 신앙을 가질 때, 예수님의 사랑을 매순간 느끼게 되고 예수님 없이는 이 세상에 살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사라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일 미사를 빠지면 천벌 받을 것 같더니만,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미사 참석을 하지 못했는데도 내 신상에 어떤 특별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계속 빠지게 되고, 나중에는 냉담자가 되기도 합니다. 또한 신앙생활 초기에는 이웃 사랑을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정말로 미워하는 이웃이지만 그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이런 마음도 시간이 흐를수록 없어집니다. 그 대신 저런 사람은 정말로 안 되어야 이 세상이 공평하다면서 그들을 내 나름대로 판단하고 단죄하기도 합니다. 이런 마음들이 생길 때가 바로 신앙의 권태기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은 교회력으로 볼 때,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날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에서는 대림시기에 들어서면서 새해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달력을 보면 1년의 마지막 날은 12월 31일입니다. 그때 사회에서는 각종 송년행사를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내가 일 년 동안 어떻게 살았나?’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력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오늘, 우리들은 내 자신을 다시금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과연 얼마나 예수님의 뜻에 맞게 살아왔는가? 혹시 신앙의 권태기를 맞아서 예수님을 멀리하며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인지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우리들에게 다시금 내 자신을 채찍질해서 더 열심히 살라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늘 깨어 기도하라.”
이제까지 안일한 마음을 가지고, 또한 예수님의 생각보다는 내 생각을 더 내세우면서 신앙의 권태기를 맞이하고 있는 나에게 다시금 ‘늘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깨어 기도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수님께서는 “늘 깨어 기도하라.”고 우리에게 권고하십니다.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은 결국 현실에 충실하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현실에 충실하다는 것은 불행이 다가와도 좌절치 않는 삶, 고통가운데서도 희망하는 삶, 끝가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삶입니다.
이제 내일이면 교회의 새해입니다. 교황 요한 23세는 영혼의 일기에서 교황에 피선되셨을 때 이렇게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주님. 저는 주님 앞에 하얀 도화지가 되렵니다. 당신께서 밑그림을 그려주시면 당신의 뜻대로 채색해 나가겠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셨던 교황님처럼 전례력으로 새해를 시작하면서 하느님은 우리에게 하얀 백지를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교황님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새로운 한 해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달라고... 그리고 우리는 새해의 마지막 날 아름답게 채색된 한 해의 삶의 결과를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복음의 예수님 말씀처럼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다시한번 새해를 하루 앞둔 오늘 우리 모두 예수님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돠록 늘 깨어 기도하라.”는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금 신앙의 권태기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