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예루살렘 예수님 부활 성당에서 기도하는 여인>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루카 10, 21)
우리는 해마다 대림절을 지내며, 예수님의 새로운 탄생을 기다립니다. 하지만 해가 바뀌고 시간이 흘러가서 해마다 성탄절을 지내고 예수님의 성탄을 맞이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실제로 우리 삶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런 의미 없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가 지내는 대림절, 이 대림절이 다하고 맞이하게 될 성탄절이 특별한 의미를 가진 것으로 남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겠습니까?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분이 이미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제가 질문하는 이 순간 여러분이 어렵지 않게 응답을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문제입니다.
오늘 독서에는 이미 생명이 떠나버린 듯한, 아니 사람이 생명의 싹을 없애버린 듯한 나무 등걸에서 사람의 예상을 깨고 새로운 싹이 돋아난다고 이야기하며, 복음에서는 우리의 구체적인 삶에서 그 싹을 발견하려는 사람이 가져야 할 삶의 자세를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신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시는데, 우리는 얼마나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물론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하느님의 외아들이니까 저런 기도를 바치는 것이지. 하지만 난 하느님께 버림을 받았다고...."
하지만 당시의 예수님 입장을 생각해 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도 가장 비참한 죽음인 십자가형으로 돌아가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 세상의 눈으로 보면, 당신의 아버지께 커다란 배신을 당한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도 예수님은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본다면 일상적인 것, 평범한 것, 지나치기 쉬운 것에서도 얼마든지 감사할 거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신앙인은 이렇게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복음의 예수님처럼.........
작은 집에 살면서 내 집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하면서 감사할 줄 안다면, 이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반면에 커다란 집에 살면서도 '내 동창 아무개는 학교 다닐 때 공부는 지지리도 못하더니 어떻게 시집은 잘 가서 대궐 같은 집에 살고 있다는데, 난 이게 뭐야?'하고 불평한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일 것입니다. 행복의 척도는 재산의 양에 비례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 말은 자신의 마음에 따라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고, 그래서 가장 멋진 감사의 기도를 바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지금 감사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이 보내주시는 아기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대림절을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이야기를 마치면서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한편 묵상해 봅니다.
어떤 기도( '사계절의 기도' 중)
적어도 하루에
여섯 번은 감사하자고
예쁜 공책에 적었다
하늘을 보는 것
바다를 보는 것
숲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기쁨이라고
그래서 새롭게
노래하자고…
먼 길을 함께 갈 벗이 있음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기쁜 일이 있으면 기뻐서 감사하고
슬픈 일이 있으면 슬픔 중에도 감사하자고
그러면 다시 새 힘이 생긴다고
내 마음의 공책에
오늘도 다시 쓴다
오늘 감사할 이유 3가지만 생각하고,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쳐보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