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테마 파크에서>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마태오 12, 8)
예수님 당시에 팔레스티나에 있었던 밀밭은 길고 좁은 밭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러한 밭 가운데 있는 이랑은 언제나 통로로 쓰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의 사건은 바로 이러한 밀밭 사이를 걷고 있을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유대인들의 안식일 법은 대단히 복잡하였고, 계명은 단순히 안식일에 일하는 것을 금한다고 되어 있었으나, 율법 해석가들은 이것을 39가지 조목으로 세분하여 가르쳤습니다.
그러다 보니 율법을 연구하고 해석하는 전문직 집단인 율법학자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이 율법 규정들을 지켜나가도록 하기보다는 율법규정들을 계속 늘려나가는 데만 신경을 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셀 수도 없이 많고 잡다한 율법규정들로 인해 백성들의 삶은 아주 부자연스럽게 되었고, 매사에 “이 행동이 율법이 맞나? 거슬리나?”를 따지며 살아야하는 율법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반면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은 단순함 그 자체셨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것을 단순화시키는데 있어서 대가셨습니다.
단순한 사람이 聖人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단순함의 가치를 가장 잘 표현한 말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단순함이란 단지 “생각이 없음”을 의미하지 않고, 여러 가지 잡다한 생각을 뛰어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복잡함이 머리라면, 단순함은 가슴이자 마음입니다. 머리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앞서야 합니다. 배가 고파 안식일 규정을 어긴 사람이 있다면, 머리는 이들을 단죄하지만 마음은 이들을 받아들입니다. 복잡한 생각은 이들에 대해 이것저것 재보고 평가하지만, 단순한 마음은 이들의 배고픔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복음의 바리사이 사람들은 똑똑했고, 생각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복잡한 안식일 규정을 그 상황에 따라 정확하게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먹은 사람을 고발했습니다. 바리사이 사람들의 사고로는 이 모든 것은 정당한 것이고 정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잡한 율법 규정에 의해 복잡한 사람들이 되어버린 유다인들이 단순함의 극치이신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었고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매우 단순했습니다. 배고픈 이들의 배고픔에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잡한 안식일 규정을 적용할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아니 안식일 규정을 적용하는 것이 오히려 잘못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정의를 담아내는 사랑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는 관용과 포용이 있었던 것입니다.
법정 스님은 말씀하십니다. “모든 종교의 핵심은 깨어있는 맑은 영혼”이라고.... 늘 원천을 생각하고 늘 겸손하게 새 출발하려는 갓 출가한 수행자의 자세가 종교를 살리는 지름길인 것이라고 강조하십니다.
옛 율법은 이제 예수님의 오심으로 인해 파기되었습니다. 그 자질구레한 율법의 규정들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예수임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만이 전부이십니다. 예수님 그분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따르는 것이 율법을 이행하는 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점점 복잡해지는 세상, 잘난 사람이 늘어가는 세상 안에 살아가면서 단순함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단순함으로써 다른 이들을 품에 안는 사랑의 삶을 생각해 봅니다. 이런 생각들이 예수님의 진정한 삶이었기에 우리는 신앙인으로 예수님처럼 살고 싶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을 거스르는 삶을 예수님과 함께 살때 우리는 자신이 가진 신앙을 통하여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