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나자렛 성 요셉 경당 내부 제단 - 상부 벽화는 요셉의 꿈에 나타난 천사>
"잠에서 깨어 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마태오 1, 24)
여행을 하다보면 가끔씩 터널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밝고 환하던 세상이 갑자기 캄캄해지고, 아무 것도 보이질 않게 됩니다. 하지만 기차는 곧 터널을 빠져 나오고, 또 다시 환하고 밝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성탄을 맞이하기에 앞서 3주간 동안 터널을 지나온 것처럼, 그 동안 하나씩 켜지던 대림초의 촛불이 이제 마지막 것까지 환희 켜졌습니다. 그 동안 우리가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했는지 반성하며 부족한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대림 3주간 동안 우리는 독서와 복음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독서에서는 이사야 예언자의 확신에 찬 말씀을 들었고, 복음을 통해서는 세례자 요한과 성모 마리아, 그리고 오늘 우리는 요셉을 만납니다. 오늘 복음의 초점은 요셉에게 맞추어져 있습니다.
요셉은 다윗 가문의 후손으로 부러울 것이 없는 청년이었습니다. 사실 성전에 의하면 독신을 원했지만 국법에서 이것이 허용되지 않아 비슷한 목적과 마음을 지닌 마리아와 호적상의 부부가 죄어 이 뜻을 지키기로 약속하고 약혼을 하였습니다.(한국의 유 요한과 누갈다처럼...)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요? 그렇게 믿었던 마리아가 갑자기 임신을 하였다니 미치고 환장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의롭게 살았던 요셉은 배신감에 속을 상했지만 슬그머니 떠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별 희한한 꿈을 꿉니다. 꿈에 나타난 천사는 마리아에게 일어난 일을 소상하게 설명해 주었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기를 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천사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순수하게 그 말을 믿으며 따랐고, 일생을 마리아와 예수님을 위해 헌신하며 봉사하게 됩니다. 이렇게 복음은 요셉의 순수한 믿음과 신앙을 통해서 이 세상에 구세주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지금 구세주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도 요셉과 같은 순수한 믿음과 신앙이 필요할 것입니다. 특별히 무시되기 쉬운 인간의 모습으로 오시는 하느님을 기다리는 대림절의 시기에 무엇보다도 필요한 자세입니다. 이것이 없다면 구세주의 탄생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에게 그런 믿음과 신앙이 있는가? 생각해 봅니다.
세상과 사회는 일등과 엘리트를 찬미하고, 그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줍니다. 경쟁과 그 경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칭찬하고 그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구세주를 낳아주는 일에는 그렇지 않음을 우리는 봅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에 관여한 사람들은 모두 세상에서 인정하는 엘리트와 일등은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자신의 삶을 가장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음을 명심하고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일주일만 지나면 우리는 성탄 대축일을 맞게 됩니다. 성탄 전날에는 구유예절을 통하여 비록 인형의 모습이긴 하지만 인간의 형상으로 오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이고, 성탄 밤 ㅠ미사를 통해서는 우리에게 오시는 하느님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는지 새로운 다짐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대림절 기간을 통하여 준비한 마음자세가 성실했다면, 성탄 축제를 통해서 느낄 수 있는 기쁨도 그만큼 클 것입니다. 그 기쁨은 인간이 준비하는 기쁨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준비해 주시는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대림 네 번째 주일인 오늘, 최종적인 기쁨을 위하여 우리는 오늘 이 순간 무엇을 준비해야 하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들 주위에는 너무 어려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과 성탄의 기쁨을 함께 나누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이번 성탄은 단순히 나만 즐기며 받는 성탄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성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도 자신의 마지막 생명까지 우리에게 나누어주시기 위함임을 마음에 새기고, 내가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눌 수 있는 마음으로 성탄의 마지막 준비를 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