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성 고삼 저수지 얼음 열매>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요한 1, 49)
한참 전에 텔레비전에서 점 때문에 망한 사람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전전긍긍하다가 답답한 마음에 점을 보러 갔습니다. 거기서 그 사람은 기가 너무 세기 때문에 내림굿을 받아야 한다는 무당의 말을 듣고는 처음에는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우연히 그 날 본 점이 모두 딱 들어맞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무당의 말대로 전 재산을 바쳐서 내림굿을 받아서 무당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무당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나에 대해서 어떤 것이라도 잘 알아 맞춘다면 그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쉽게 믿어버립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나타나엘은 예수님께서 나자렛 출신이라는 이유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실 구세주라는 것을 믿지 못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던 나타나엘을 보았고 또한 나타나엘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다는 이유로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며 이스라엘의 임금이라는 것을 믿고 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이 고백은 그리스도인이 고백하는, 진정으로 예수님께 믿음을 드리는 일과는 거리가 먼 고백입니다. 왜냐하면 나타나엘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믿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신적인 예시능력을 보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에서도 이런 류의 사람을 만나는 것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하늘나라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기보다는 기적이나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 졌을 때에 더욱 더 열심히 예수님을 찾는 사람을 종종 보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기적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하느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당장 이루어 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언제라도 예수님을 헌신짝처럼 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찾는 것은 자신의 앞일을 해결해주는 용한 점쟁이이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구세주는 아닌 것입니다.
물론 눈앞에 보이는 기적이나 기도의 성취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굳건히 하는데 도움을 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기적만을 쫓아간다면 그것은 올바른 믿음이 아닐 뿐더러 오래 가지도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라.”(요한 1. 43) 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광뿐만 아니라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루가 9. 23)는 십자가 길에 함께 동참으로써 이루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미사 안에서 성체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우리는 나타나엘이 고백한 그런 얄팍한 고백이 아니라, 진심으로 예수님께 믿음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