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갈릴래아 지방 참행복성당 외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마르코 2, 5)
한 주간을 정리해야 하는 금요일에 와 있습니다. 요즘 들어서 시간이 참으로 빨리 흐른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한 해가 시작한지도 벌써 한 달 중의 절반 가까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하는 일이 없다고 느끼는데,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만 갑니다. 이렇게 정신없이 시간을 흘러 보내면서도 이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는 질문을 해 봅니다. 사람의 몸이 바쁘면 그렇게 배부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는데, 저는 상대적으로 그렇지는 않은가 봅니다. 그리고 스스로 결론 맺기를 생활이 의미가 있으려면 내가 무슨 정신으로 사는가?, 즉 어디에다 마음을 두고 사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 말을 신앙의 내용으로 바꾸면, 내가 무엇을 믿고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따라 힘이 있는가? 없는가가 달라진다는 소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한 이 다짐이 의미가 있으려면 올바른 신앙의 자세를 우리 안에 세우는 일도 필요합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의 말씀은 그렇게 우리 안에 세워야 할 믿음에 대한 이야기와 그 본보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독서에서는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했던 생활의 반성을 통하여 신앙인들이 가져야 할 올바른 믿음을 전해주고 있으며, 복음에서는 인간의 욕심이 앞장서기는 합니다만 믿음 때문에 드러나는 치유의 기적에 관한 일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올바로 믿어야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하루하루 생활은 믿음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이라는 소리를 하고 듣게 되면 왠지 모르게 머리끝이 쭈뼛해지는 느낌을 갖습니다. 우리의 평소 생활과 거리가 있다고 느끼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음날 아침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하루의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잠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고, 우리의 몸이 제대로 알아서 소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우리는 입으로 이런 저런 음식물을 섞어서 넣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우리의 몸으로 하는 일이기에 믿음이라는 표현을 쓰면 안 될까요? 하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것을 보면, 믿음은 곧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믿음이 곧 생활인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윌리암 텔의 이야기에서 윌리엄 텔이 아들의 머리 위에 사과를 올려놓고 멀리서 화살을 쏘아 맞춘 것도 믿음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예수님이 계신 곳에 찾아와 염치없이, 체면 불구하고 지붕을 뜯으면서까지 행동했던 것도 사실은 믿음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믿음은 현실과 구별되지 않은 삶이었습니다.
사람은 믿는 대로 그 삶을 이루어 간다고 합니다. 불안하게 생각하면서 일을 시작하거나 남의 호의를 받아들이면 원하지 않는 결과를 맺게 마련입니다. 사람은 그 누구도 죽으려고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제 각기 다른 삶을 살아도 참된 의미가 있으려면 얼마나 올바른 믿음을 갖고 생활했는가에 따라 하느님의 말씀이 그 삶 안에 열매를 맺었는지 그렇지 못했는지가 달라질 것입니다.
복음에서 중풍병자의 친구들은 바로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중풍에 걸린 친구를 데려온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가졌기에 친구를 위한 수고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늘 이야기 하지만 신앙은 믿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중풍 병자와 같은, 그리고 그의 친구들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예수님과 또 오늘날에는 교회를 통해서 이루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신앙은 머리로 이해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체 성사나 고해성사를 비롯한 모든 성사가 우리의 머리로 이해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의 능력에 비해 비교되지 않을 만큼 커다란 하느님의 은총과 능력과 사랑을 믿고 의지하며 생활할 때 우리는 하느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도 복음의 중풍병자나 그의 친구들이 가졌던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서 우리가 갖는 믿음은 그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가 가진 믿음에 따라서 삶의 아름다움은 달라진다는 것을 명심하며 하루를 살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