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아브라함의 무덤이 있는 막펠라 동굴 내의 회당 내부 - 토라(율법보관함)>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마르코 2, 27)
세상이 발전할수록 우리를 규제하는 것은 훨씬 더 늘어납니다. 그리고 알아야 할 것도, 지켜야 할 것도 그만큼 늘어납니다. 원시시대에는 그저 사람들이 목숨을 유지하기만 하면 충분하던 시대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발전할수록 구체적으로 우리가 알아야할 필요성이 없는 것 같은데도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늘어만 갑니다.
또한 세상이 발전할수록 법 조항은 늘어만 갑니다. 애초에 만들어진 의미가 어떠했는지는 우리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어도, 법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고자 제정한 것이라고 합니다. 한자로 쓰는 법(法)이라는 글자는 물[水]이 흘러가는[去] 길을 따라서 만들어진 글자입니다. 그러나 요즘을 사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법을 좋아하고 반기지 않습니다. 하나라도 모르고 사는 게 편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도 그랬던가 봅니다.
성경에 나오는 법이라고 하는 말의 의미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에 가까이 갈 수 있고 그 뜻을 실천할 수 있는가 라는 생각아래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법 때문에 곤경에 처한 예수님을 오늘 복음을 통해서 봅니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안식일이란 하느님이 쉬셨던 일을 본받아 쉬는 일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되새겼던 날입니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니 사람들을 구속하던 내용만 남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질문에 대하여, 직접적인 응답대신 이스라엘 역사에서 성군이라 부르던 다윗이 한 일을 비교하여 올바른 정신을 먼저 기억하도록 권고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을 가장 번거롭게 하는 법이 있다면, 그것은 고해성사일 것입니다. “주일에 성당에 나가지 않으면 커다란 통속에 들어가서 뭔가를 해야 한다며....” 성당에 나오지 않는 사람이 고해성사에 대해서 들은 것은 있어서 표현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요즘 모습은 그것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소심증에 걸리면 그것도 안 되겠지만, 고해성사만 해치우면 모든 것이 깨끗해진다고 믿는 것도 잘못의 하나입니다. 마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법을 정하고 지키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선행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더 찾아야 한다는 것이지, 그것만 지키면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선행을 기억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끈기에 끈기를 더하여 하느님을 올바로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의 구체적인 행동에 대하여 하느님은 판단하시지 않으십니다. 아마 하나하나 모든 일을 판단하신다면, 올바로 살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성심 성의껏 하는 행동들 하나하나가 모여서 좋은 결실을 이룬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행복도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작은 일들이 모여서 좋은 결실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언제나 우리의 올바른 마음자세와 삶을 하느님께 봉헌해야 할 것입니다.
단순히 법의 규정에 따라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하느님을 섬기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