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갈릴래아 지방 타부가에 있는 빵의 기적 성당 내부 정원 - 안의 나무는 올리브 나무>
"그분께서 하시는 일은 전해 듣고 큰 무리가 그분께 몰려왔다."(마르코 3, 8)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많은 일을 생각하고, 많은 일을 처리하면서 삽니다. 그렇게 많은 일들을 하면서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도 있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할 수 있는 일도 있습니다. 특별히 전문적인 분야라고 생각할 때에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없다면 제대로 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래서 전문적인 사람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들은 독서의 말씀도 전문적인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독서에 나오는 전문적인 분야란 대사제의 역할입니다. 대사제가 하는 전문적인 분야는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정상으로 만들어주는 역할입니다.
하느님께 비는 사람,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대신 빌어주는 사람이 바로 대사제로서 예수님의 역할이었다고 오늘 독서는 전하고 있습니다. 남을 위해서 대신 무엇인가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잘못하면 꾸중 듣고 비판받는 일이 다반사이기에 더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사제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인간의 잘못에 대하여 하느님께 대신 용서를 청합니다.
예전부터 제사를 바치려면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물건이 필요했는지도 모릅니다. 언제인가 초등학교 첫영성체 교리를 하면서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은 육신과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육신인 몸이 살려면 눈에 보이는 음식을 먹어야 하고, 영혼도 무엇인가 먹는 것이 있어야 살 수 있는데, 영혼이 먹는 음식은 예수님의 성체와 기도”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뜻을 아이들이 얼마만큼이나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독서에 나오는 대사제가 하는 일도 개인으로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뛰어넘어 공동체로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종이 한 장이라도 둘이 함께 들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전문가라는 이름표를 가진 사람이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잘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 시대에는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신앙인들이 전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아마 그것은 하느님과 대화하는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전문성은 무엇이었겠습니까? 복음을 보면, 무엇이라고 단정해서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가르침과 기적을 베푸는 일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 일의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 오늘 복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문가 앞에서 비전문가였던 악령들은 한결같은 소리를 지르며 물러납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사람들에게 아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시고 막으셨습니다.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입으로만 고백하는 것은 의미 없다는 말씀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입으로만 고백하고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는 것보다도 못한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참으로 제대로 되려면 언행일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동이 언행에 일치가 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당연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또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늘 성체안의 예수님과 머물고 기도하믕로써 은총의 힘도 청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