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태안군 운여 해변>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를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두어라."(마태오 13, 29)
피부에 상처가 나서 피가 나면 그 상처를 덮으려고 딱지가 앉습니다. 그런데 그 딱지를 떨어질 때가 되어서 떼어내면 괜찮은데 성미가 급해서 아물지도 않은 딱지를 그냥 떼어내 버리면 그곳에서 다시 피가 흐름니다. 이렇게 몇 번을 거듭 하다가 도리어 더 큰 상처를 만드는 경우를 체험하신 적들이 있을 것입니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보기 흉한 딱지가 떨어지고 새 살이 날 터인데, 좋지 않은 것을 보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를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두어라.” 라는 말씀을 통해 당신의 마음을 우리에게 전해 주신다.
더러운 것에 대한 미움보다 더욱 간절한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 악한 것에 대한 미움보다 더욱 간절한 선한 것에 대한 사랑, 더러운 것을 골라내서 당장 치워버리는 깨끗함 보다, 더러운 것마저 깨끗해지기를 기다려 주는 진정한 사랑을 추구하시는 당신의 마음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물건이 있는데, 그것은 손수건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손수건 같으신 분이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손수건은 우리들이 가지고 다니는 것들 중에 가장 사랑이 많이 담긴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손수건은 말없이 우리의 온갖 더러운 것들을 닦아주고 감추어 줍니다. 때로는 눈물도 닦아주고, 때로는 더러운 코도 풀게 하고, 손에 때가 묻었어도 아무 말 없이 닦아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사용할 때까지 그 손수건은 우리들의 호주머니에서 말없이 기다려 줍니다. 이런 손수건처럼 예수님께서도 우리들의 더러움을 항상 닦아 주시면서, 우리가 잘못을 회개하고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시고 변함없이 기다려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예수님의 모습 안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자신의 허물에 대해서는 덮으려 하지만, 남의 허물에 대해서는 판단하고 이야기하고 기다리지 못하고 뽑아버리려 합니다. 본인의 말을 듣거나 사실을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내가 잠깐 듣고 보았다고 해서, 아니면 그저 소문만 가지고 온갖 판단을 내리고 소문을 내며 심판합니다. 마치도 자신이 하느님인양 말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는 진정으로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은 남에 잘못에 대해 이야기하고, 남의 가라지를 사정없이 뽑아 버리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의 잘못을 이해하고 덮어 주며, 가라지마저도 기다려 주는 데 참 맛이 있음을 깨달았으면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이런 것입니다. 당신의 그 따뜻한 손으로 다른 이의 어려움과 허물을 감쌀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랑을 예수님께서는 가르쳐 주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언제나 한결같은 사랑과 믿음과 희망으로 결코 쉽게 판단내리고 뽑아 버림 없이, 넉넉한 마음으로 변화되기를 침묵으로 기다려 주시는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기를 기도드리며 함께 노력하도록 했으면 합니다.
세상이라는 넓은 밭에 좋은 씨를 뿌리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뜻이 널리널리 퍼지도록 땀 흘려 일하는 일꾼이 되었으면 합니다. 마지막 날의 추수와 심판은 하느님께 맡기고 오직 묵묵히 일하는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들이 되도록 노력하기를 희망합니다. 그 이유는 복음 환호송의 말씀처럼 "그 말씀에는 너희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