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예루살렘 비아 돌로로사 제 2처>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마태오 9, 14)
거리에 걸려있는 플랜카드나 신문에 끼어오는 전단지에도 종종 살을 빼는 방법으로 단식을 권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즈음 사람들의 관심은 살을 빼는 다이어트식품에 쏠려있습니다. 그리고 단식법은 그 문제해결에 중요한 열쇠가 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단식의 유래는 오랜 옛날로 거슬려 올라가서 찾아보면, "옛날 이집트 사람들은 젊게 보이려고" 단식을 하였고, "옛날 희랍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방심하지 않으려고" 단식을 하였다. 미국에 살았던 "인디안들은 용기를 드러내 보이려고" 단식을 하였고, "러시아 화가들은 그림을 더 잘 그리기 위해서" 단식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처럼 단식을 했던 이유가, 젊게 보이려고, 정신적으로 건강하려고, 또는 용기를 들어내 보이려고 하는 자연적인 이유 외에도 옛날 사람들은 영적인 이유에서도 단식을 하였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부처님도 몸이 너무나 야위어 져서 배를 누르면 등뼈에 닿을 정도로 단식을 하였고, 초대교회 신자들도 사막에서 40일간 단식을 하신 예수님을 본받기 위해서 죄를 보속하거나, 하느님의 특별한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단식을 하였다고 합니다. 물론 옛날 유대인들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기 위해서 단식을 하였고, 메시아인 구세주오심을 준비하기 위해서도 단식을 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예수님이 복음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단식을 해왔던 바리사이 사람들로부터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하는 질문을 받았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단식을 하는 바리사이 사람들은 허세를 부리면서, 어떤 이들은 음식을 먹지 않아 쇠약하게 된 것을 온 세상이 알아주기를 원했고, 어떤 이들은 독특하게 다른 사람의 눈길을 끌어야만 했고, 어떤 이들은 얼굴에 흰 칠을 하고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돌아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마치 인생살이에서 오는 흥을 깨는 분이고, "신앙생활"은 인생에서 흥미를 빼앗아 가는 것으로 보여지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사순절에 공식적으로 두 번 단식을 합니다.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입니다. 하지만 단식하는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 봅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단식하는가?" 만약에 단식하는 날, 육신의 "배고픔"만 절실히 느끼며, "먹고 싶다"는 욕망으로만 우리 생각을 가득 채우며 하루를 지낸다면, 우리의 육신은 비록 단식을 했을지라도 우리 영혼은 조금도 단식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따라서 단식을 하면서 육신의 "배고픔" 보다 더욱 절실히 느껴보고 싶은 것은 "예수님의 심정"입니다. 그리고 내 영혼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싶은 갈망은 "먹고 싶다"는 육신의 욕망보다 더욱 뜨겁고 거룩한 갈망이어야 하고, "예수님처럼 이 세상을 사랑해 보리라!"는 영적인 갈망이어야 할 것입니다.
단식에 대한 이런 마음, 아론 갈망을 가지고 생활해 보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