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베타니아 성 라자로 성당 외벽 벽화 - 왼쪽부터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성 라자로, 성녀 마르타>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요한 11, 22)
일주일 전에 우리는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의 축일을 기념했습니다. 오늘은 그의 언니인 성녀 마르타의 기념일입니다. 축일을 맞으신 모든 분들께 축하를 드립니다.
살아가면서 생활속에서 우리들은 의심을 상당히 많이 합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어느 순간에 의심하고 있는 내 자신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거짓말이 “사랑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랑해"라는 말은 거짓말이라 할 지라도 기분좋아지고 저절로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보면 마르타의 성격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동생 마리아가 조용히 앉아 있는 성격이라면, 언니 마르타는 활동적입니다. 루카 복음(10, 38-42)을 보면 예수님이 베타니아의 자신들의 집을 방문했을 때 마리아는 조용히 예수님의 발치에서 말씀을 들었고, 마르타는 예수님을 대접하려고 부산하게 움직였으며,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마리아가 얄미워 마리아에게 핀잔을 주라고 예수님께 말한 장본인입니다. 그래서인지 마리아는 언제나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생활한 반면, 마르타는 자기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묻어두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말해 버리는 성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가만히 앉아서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마을 밖에까지 뛰어나가 예수님께서 달려가는 열성을 가졌지만, 반 투정을 하는 말투로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저희 소식을 듣고 지체하지 않으시고 여기로 빨리 오셨더라면, 제 오빠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투정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마디는 성서 전체에서 볼 때 참으로 인간미가 있는 말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르타 성녀는 예수님을 무척이나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향한 마르타의 사랑의 마음을 오늘 복음을 통해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오빠인 라자로가 무덤에 묻힌 지 나흘이나 지난 뒤에 나타난 예수님을 무정하다고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위로하듯 말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라자로와 마리아, 마르타 자매를 무척이나 사랑했다고 복음은 전합니다. 따라서 라자로가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쫓아가는 것은 당연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곧바로 라자로에게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처럼 무덤에 묻힌 지 나흘이나 지난 뒤에야 찾아가십니다. 이런 예수님을 생각하면, 배신당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마르타의 사랑을 우리는 접하게 됩니다. 그 사랑의 결과는 라자로를 다시 살리심으로써 죽음에서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 당시 사람들이 믿었던 마지막 날에야 다시 부활할 것이라는 마르타의 말과는 달리, 지금 당장 다시 살아나는 영광을 목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은 어떠합니까? 혹시 끊임없이 의심하고, 끊임없이 보상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랑만을 쫓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런 사랑 안에서 예수님을 체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곳에 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