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양 죽녹원>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 살아난 것이다."(마태오 14, 2)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하고 행복을 찾습니다. 그러면 행복은 과연 어디 있는 것인가요? 행복은 세상의 눈으로 보는, 외적인 아름다움에 있지 않습니다. 행복은 돈이나 명예에 있는 것도 아닙니니다. 물론 잠깐 동안의 기쁨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커다란 기쁨을 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헤로데 왕 역시 행복을 찾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두와 함께 나누는 행복이 아니라 혼자만의 행복을 찾았습니다. 즉, 남의 행복을 빼앗아 자신의 행복만을 챙기려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오늘 복음에 나오는 헤로데 왕은 아주 나쁜 왕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헤로디아 사건으로 인한 그의 개인적인 모습을 살펴보면 몇 가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그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이 유명해지자 헤로데는 자기가 죽인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닌가 하고 그가 생각할 만큼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이 사실은 자신의 비행을 바르게 말하는 사람을 권력과 힘으로써 제거할 수는 있겠지만 진실한 사람의 말은 침묵을 지키지 않는 다는 진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둘째로, 헤로데는 경솔한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는 헛맹세를 하면서 법을 깨뜨렸습니다. 그는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가 요구할 것이 무엇인지도 생각해 보지 않고 무엇이나 들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는 살로메의 요구가 부당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체면 때문에 체면을 지키기 위해 더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만큼 강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이렇게 됨으로써 헤로데는 자기 행실로 인해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헤로데는 동생의 부인인 헤로디아를 유혹함으로써 불길한 운명을 만들었고, 그 여인에 의해 요한이 학살되고 얼마 안 가 평판이 나빠져서 자신의 왕위도 빼앗기고 모든 것을 잃어버렸고 유배지에서 운명해야만 했습니다.
헤로데의 잘못된 판단은 단순히 헤로데 개인의 불행으로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헤로데는 자기 동생의 아내를 빼앗아 재혼을 한 결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상처를 입었는지 한번 생각해본봅니다. 우선 그 재혼이 옳지 못하다고 주장한 세례자 요한의 죽음입니다. 또한 파혼을 당한 헤로데의 본처인 아라비아 공주 역시 큰 상처를 입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에 앙심을 품은 아라비아 왕이 전쟁을 일으켜 많은 사람이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헤로데 왕은 행복했을까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옳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기에 늘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는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라고 말하면서 불안해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볼 때, 혼자만의 행복은 진정으로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오히려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지 않지만, 남과 더불어 하려는 마음이 있을 때 그래서 남의 아픔을 같이 아파할 때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과연 어떤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혼자만의 행복인가? 아니면 함께하는 행복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