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피렌체 대성당 야경>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4, 11)
오늘 성경의 주제는 “겸손”입니다.
제 1독서에서는 “네가 높아질수록 자신을 더욱 낮추어라. 그러면 주님 앞에서 총애를 받으리라!”고 하였고, 복음에서 예수님은 혼인잔치에 가거든 윗자리에 앉지 말라 하십니다. 살면서 높은 자리를 탐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에겐 누구나 자신의 기본 자리가 있습니다. 아버지로서의 자리. 어머니로서의 자리. 자녀로서의 자리. 어른으로서의 자리입니다. 먼저 이 자리에 합당한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자신의 자리에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높은 자리는 그런 사람에게 어울리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도 괴롭고 남에게도 고통을 줍니다. 사람만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도 누를 끼칩니다. 자신의 위치를 넘어서는 말과 행동으로 교만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삶의 신비를 함부로 판단하고 자신과 이웃 안에 있는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매사를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려 합니다. 전형적인 교만의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높은 자리에 앉고 싶어 합니다. 그러기에 암투가 있고 거짓과 위선이 생깁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탐하다가 삶을 그르치고 있습니까가? 모든 자리는 합당한 사람이 앉을 때 빛납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리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높은 자리에 앉거나 낮은 자리에 앉더라도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사람의 높고 낮음은 자리가 아니라 하느님의 판단하심에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높은 자리의 첫 조건은 겸손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기본 자리에 충실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예수님은 비유에서 자신을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라 하였습니다. 자신의 본 모습을 먼저 볼 줄 알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본 모습이 무엇이겠습니까? 아무 것도 아닌 모습입니다. 세상은 포장하기를 좋아합니다. 별것 아닌데도 그럴싸한 포장으로 치장합니다. 하느님 앞에선 포장을 벗어야 합니다. 아무 것도 아닌 모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삶의 기본 자리에 충실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일 때 높은 자리는 어울립니다.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이 생기는 것입니다.
"높"이라는 글자를 거꾸로 본다던지 위에서 본다면 "푹"자로 보입니다. 인간은 "높"아지려고 할수록 하느님께서는 "푹"꺼져라 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반대로 인간자신이 하느님 앞에 "푹"꺼지는 존재로 생각하고 처신할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높"게 들어 올리실 것입니다.
아르스의 성자 요한 비안네 신부는 "겸손은 모든 덕을 엮어 놓은 묵주와 같고 교만은 모든 악을 엮어 놓은 묵주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주제파악을 잘 하는 신앙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가르침을 생각하며 모든 이는 각자가 지금의 자리에 올바르고 합당한 과정을 거쳐왔는지 먼저 살피고, 다음은 그 자리가 요구하는 소명과 책임을 제대로 다하고 있는지? 하느님의 공의로운 심판과 연관하여 반성하고 고뇌하는 삶을 살아야, 영원한 생명이 있는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고정석인 높은 자리를 잘 배정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 나라에서는 정말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귀한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합니다. 우리 나라의 모든 순교자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