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 마곡사의 단풍>
"온갖 열매 땅에서 거두었으니, 하느님, 우리 하느님이 복을 내리셨네."(시편 67, 7)
우리의 고유 명절인 추석(秋夕), 한가위입니다. 모든 분들이 기쁘고 행복하게 지내시기를 기도합니다. 교회는 각 민족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한 전통과 문화 속에서 복음이 뿌리내리기를 바라기 때문에 우리 고유의 명절인 한가위를 대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가위 대축일은 신앙인인 우리에게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추석 명절이 단순히 먹고 마시고 즐기는 축제일이 아니라,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조상들의 유업을 기리면서, 서로 사랑을 나누는 축제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의미 깊은 복음 말씀을 들었습니다. 어떤 부자가 농사를 지어 추수를 하였는데, 풍작이 되어서 엄청난 수확을 거두게 되었고,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이런저런 궁리 끝에 부자는 작은 창고를 헐고 큰 창고를 새로 짓기로 결심했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부자가 기껏 생각해 낸 것이 어떻게 하면 그 많은 수확을 혼자서 독차지하면서 즐길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부자는 그 날 밤에 죽습니다. 그래서 그 많은 수확을 혼자 독차지하지도 못했고, 실컷 쉬고 먹고 마시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거둔 곡식은 다른 사람들의 손에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어찌보면 부자가 그 많은 수확을 혼자 독차지하면서 호사스러운 생활을 즐기겠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이미 그는 죽음의 길에 들어서 있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 부자는 죽을 짓만 골라서 한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선 그 부자는 어떻게 해서 그 풍성한 수확을 얻게 되었는지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우리 인간들의 노력만으로는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도우심이 없다면 아무리 우리 인간이 열심히 노력한다 해도 한 톨의 쌀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때맞추어 비를 내려 주셔야 하고, 적절한 햇빛과 기후를 주셔야만 농사를 지을 수가 있습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이 점을 몰랐습니다. 그 부자는 자기가 땀을 홀려 애를 썼기에 풍성한 수확을 거둔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오직 자신의 노력의 결과라고 오만한 마음을 먹은 것이 근본적인 잘못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자의 눈에는 하느님도 보이지 않았고, 하늘도 보이지 않았고, 가난한 이웃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곡식 더미와 재물만 보였습니다. 부자는 창고에 재물만 잔뜩 쌓아 놓고 있으면, 얼마든지 호의호식하면서 잘살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보다는 창고에 쌓인 재물을 더 믿었습니다. 그러나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인 재물이 그의 생명을 보장해 주지 못했고, 결국 그는 죽은 것입니다.
이 부자의 어리석음은 또 있습니다. 부자는 자기 운명의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면서, 자신이 쌓아 둔 재물에 희망을 걸면서, 혼자서 그 모든 것을 영원히 누리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내일의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합니다. 지금은 이렇게 살아서 숨 쉬고 있지만, 내일까지 살아 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내일이 아니라 지금입니다. 지금 서로 사랑하고 서로 나누고 베풀면서 성실히 사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내일을 대비하는 삶인 것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부자는 내일 어떻게 될지도 알지 못하면서, 그 모든 것을 혼자 독차지하면서 내일을 대비하려 했습니다. 그것 또한 죽을 짓을 골라서 한 것입니다.
우리는 고유의 명절, 한가위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슬기로운 우리의 선조들은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이 가을에 추석 명절을 정하고, 풍요로운 결실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고, 조상들의 은덕에도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로부터 농사를 본업으로 해서 살아온 우리 민족은 하늘을 두려워할 줄 알았고, 하늘에 감사드릴 줄 아는 순박하고 슬기로운 민족이었습니다. 알맞은 기후와 적당히 때맞추어 비를 내려 주시어 풍성한 수확을 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신 하늘에 새로 수확한 곡식으로 빛은 음식과 햇과일로 상을 차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우리 조상들은 풍성한 결실을 거두게 되는 것은 하늘의 도움 때문이지, 결코 자신들의 노력으로만 그렇게 된다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덥지도 춥지도 않고 모든 것이 풍성하게 결실 맺는 이 계절에, 한가위 명절을 정하고 하늘에 감사를 드리는 축제를 벌였던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 민족은 조상의 은덕에도 감사할 줄 알았습니다. 오늘의 나는 조상들의 은덕을 바탕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기에, 내가 존재할 수 있도록 삶의 바탕을 마련해 주신 조상들의 은덕에 감사를 드리면서, 그분들의 명복을 비는 제사를 바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내는 추석 명절은 나눔과 사랑의 축제일입니다. 흩어졌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햇곡식으로 빛은 음식과 풍성한 햇과일을 장만하고 서로 사랑을 나누는 날입니다. 그리고 이웃과도 장만한 음식을 서로 나누면서, 사랑과 우의를 돈독하게 하는 날입니다.
우리가 지내는 이 추석 명절을 통하여 사라져 가는 우리의 고유한 풍습과 전통을 되살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순응하고 감사하는 생활과, 조상들의 은덕에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날이 서로 사랑하고 나누는 즐거운 축제일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난 조상들의 영혼에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면서, 우리 모두와 우리 모두의 가정에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이 풍성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