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산 죠반니 로톤도(San Giovanni Rotondo)의 오상의 비오 사제 기념성당 내부 -오른쪽 예수 님 벽화 밑에 신부님의 유해가 모셔져 있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루카 9, 20)
우리가 모르는 사람에 대해 알게 되는 과정을 보면 먼저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합니다. "저 사람은 누구야?", 또는 "저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이야?"하고 묻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 사람에 대해서 설명을 해줍니다. 그 설명은 주로 그 사람의 이름과 나이, 고향, 집안 배경, 가족 관계, 하고 있는 일,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 인식의 단계는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은 정보 때문에 선입견을 가지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첫 번째 인식의 단계만을 가지고는 그 사람에 대해서 제대로 된 인식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그 사람에 대하여 알고 싶다면 두 번째 인식의 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그것은 그 사람을 만나보고,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나서, 다시 말하면 그 사람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그 사람을 알게 되는 두 번째 인식의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만 그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찾아가서 구세주를 만났다고 말했지만, 나타나엘은 “나자렛에서 무슨 신통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하고 대답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첫 번째 인식의 단계에서 생기는 선입견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자 필립보는 나타나엘에게 예수님을 직접 와서 보라고 이야기했고, 직접 와서 예수님을 만난 나타나엘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이것이 두 번째 인식의 단계입니다. 이때 첫 번째 인식의 단계에서 지녔던 선입견을 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직접 와서 보고 체험하는 두 번째 인식의 단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혼자 기도하시다가 곁에 있던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러자 제자들은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고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분이 다시 살아났다고 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렇게 평가한 것은 첫 번째 인식의 단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첫 번째 인식의 단계만으로 잘못된 평가를 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두 번째 인식의 단계에 있는 당신 제자들은 실제로 당신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진지하게 물으시는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자신이 체험한 예수님에 대해서 대답합니다.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하신 이 질문은 당신 제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모든 신앙인들에게 해당되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첫 번째 인식의 단계를 성경과 성전을 통해서 또 신앙선조들의 체험을 통해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대한 첫 번째 인식의 단계에서만 끝날 것이 아니라, 두 번째 인식의 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 대한 두 번째 인식의 단계, 곧 예수님을 직접 체험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을 직접 만나 보려 해도 예수님께서는 이제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 인식의 단계를 통해 알고 있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들을 근거로 한 묵상과 기도를 통해 그분을 우리 마음속으로, 삶을 통하여 체험해야 합니다. 그럴 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신 예수님의 물음에 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오늘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답을 드려야할 나에게 하시는 예수님의 질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요? 남들이 말하는 대로 대답할 것인가요? 아니면 내가 체험한 그분에 대해서 답할 것인가요? 정답을 드릴 수 신앙인이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