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眞菴聖地

바로가기메뉴
주메뉴바로가기
서브메뉴바로가기

유틸메뉴


주메뉴


서브메뉴

Photos

  • 敎皇聖下와 天眞菴 聖地

  • 朝鮮敎區 設立者 墓
  • 天眞菴大聖堂 鳥瞰圖
  • 聖地 行事
  • 巡禮團
  • 聖地 奉仕者
  • 博物館 建築
  • 四季節 風景
  • 建築 現場
  • Msgr.卞基榮
  • Card. Walter Casper & Card. Fernando Filoni in Chon Jin Am
  • 其他
성금 봉헌 안내시복시성 추진성지안내 조감도

본문내용

Photos
  1. Photos
  2. 建築 現場

사진을 클릭하시면 큰 사진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성역 내 공사 현장
성역 내 빙천 샘 공사 현장: 천진암 성지의 빙천(氷泉)은 정약용 선생 詩文에도 나오는 뜻있는 샘물터로서,겨울에 영하 30도에서도 얼지 않는 샘이다.정약용 선생 시대에 이미 천진암이 폐허가 된 후, 산골 농민들이 개와짱을 모아 놓고(현재의 은행나무 밑), 전답을 일구었었으나, 몇차례에 걸친 큰 장마 때(을축년, 1925?) 산사태에 모두 파괴되고 매몰되었었는데, 1980년 성현들의 묘를 이장한 후, 샘물을 복원하여(광지원 조경전문가 이종철씨 팀), 최근까지 사용하였으나,옹달샘에 낙엽이 떨어져 쌓이고, 때로는 개구리나 도롱용도 찾아오고, 밤에는 노루와 산토끼, 너구리와 산돼지, 등 야생 동물들이 때로는 대낮에도 내려와서 물 마시고 가면서, 아무데나 큰 일 작은 일, 등 실례를 하여, 위생상 더 이상 음료수를 위한 옹달샘으로 그대로 방치하며 사용할 수가 없어서,능참봉의 지시를 따라, 염윤식 시설과장이 공사책임을 맡아, 금년에 부득이 계곡 간이 교량의 수해복구을 하면서, 빙천의 옹달샘 큰 우물도 정화,보수공사를 하였다. 정약용 선생의 표현대로, 커다란 옹달샘 빙천(氷泉) 물이 지하로 스며서 나오는 암천([暗泉劣一線]의 분출구를 살려, 주변의 거대한 바위돌들로 보호하여, 이제는 24시간, 365일, 변함없이 흘러 나오는 분수구를 3개 만들어, 겨울에는 김이 나며 따뜻하고(영상 15도), 한 여름에는 얼음처럼 몹씨 차가운, 빙천수(氷泉)(영상 15도)로 오래오래 흐르는 샘이 되었다. 이 빙천의 암천수는 이벽성조와 젊은 소년들이 1770년부터 1784년 봄(4월 중순)까지 마시던 뜻깊은 샘물이다. 상류 약 50m ~ 100m ~ 250m 지점의 바위 틈으로 흐르는 계곡물이 땅 속 바위 틈으로 새어 흐르는 물이다. 丁若鏞 先生의 文獻에 나오는 氷泉 우물 샘에 관한 記錄 일부 拔萃 令晨起掬氷泉盥漱/ 潺湲不可聞/ 暗泉劣一線/ 寮院無逾莚/ 樓前療舍半墟丘/ 芬芳旣沈歇寺破無舊觀/ 破瓦耕翻壘壘丘/ 寺破猶奇絶/ 前躅凄迷不可求/ 入山非喜佛/ 樵斧稀喬木/禪燈廢少林/ 李檗讀書猶有處/ 客到虛堂地自幽/ 石徑細如線/ 昔我童時游/ 豪士昔講讀/ 尙書此燒鍊/ 禪樓啞古鐘/ 佛幀颺敗絹/,,,etc.,,. 1816년에 쓴 글에서는 1779년 己亥년 講學 당시에 [氷泉]이라고 부르던 것을, 1827년 丁巳年에 천진암 현장에 와서 쓴 詩文에서는, [暗泉]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家屋은 사라지고 옛 사람들도 사라져 없으나, 우물은 남아 있고, 옛날처럼 물이 솟아 흐르고 있다. 이미 오랜 세월, 이 옹달샘에서 물을 마시는 사람들이 없어서, 벌써 낙엽이나 잡풀, 혹은 土沙 등으로 매립되어, 우물이 메꿔지고 있어도, 매립된 토사 속으로 샘물은 계속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천진암 성지, 사암당 상수도 배수로 공사(2011.11. 04)



천진암 성지, 사암당 상수도 배수로 공사(2011.11. 04)



천진암 성지, 사암당 상수도 배수로 공사(2011.11. 04)



천진암 성지, 사암당 상수도 배수로 공사(2011.11. 03)
조회수 : 3214

목록사진을 클릭하시면 큰 사진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천주교회창립사
천진암성지 소식지(2019년 1월호)
ebook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