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어느 종군 기자의 일기에 나오는 어느 군종신부의 말.
1950년 8월, 낙동강 전투가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시절, 지금의 왜관 부근 낙동강 강가 모래벌판에는 여기저기 젊은 용사들의 시체들이 흩어져 뒹굴며 널려 있었다.
방아쇠 당기기에 양쪽이 모두 지쳤는지, 공격이 뜸하여 한 쪽이 좀 물러서고 있을 때, 선혈이 낭자한 백사장에서 야전용 군용 삽으로 모래를 파고 적군의 시체도 아군의 시체와 아무 차별 없이 성의껏 묻어주고 있는 미국인 군종 신부에게, 전황을 취재하던 한국인 종군 기자가 말하였다.
“당신은 적군이 밉지도 않소? 파리 떼와 까마귀밥이 되게 그냥 내버려 두시지 !" 그러나 미국인 군종 신부의 말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젊은이들을 이렇게 죽게 만든 공산주의 사상이 미울 뿐이지, 죽은 이 젊은이야 미워할 께 없소. 오히려 불쌍하니, 마음으로나마 동정해야지요.”
이 이야기는 1951년 전쟁 중 필자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무찌르자, 오랑캐 몇백만이냐? 대한남아 가는데 초개로구나! 나아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 나아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 노래를 목청껏 부르던 시절, 우리 교과서 국어 책에 나오던 글의 내용이다. 사실 피 흘리며 죽어 있는 이 사람들은 모두 집집마다 부모형제들이 사랑하던 18세 전후의 아들들이었다. 동족끼리 아무런 원한도 없는 사람들을 살해하는데 죽창과 도끼와 낫까지 피를 묻히던 그 시절, 저 미국인 군종신부가 적군의 시체를 정성들여 매장해 주던 행동의 의미와 가치와 교훈은 그의 단순한 한마디 대답 속에 담겨 있었다.
최근 TV에서 군사훈련 장면 중에 연일 잔인하고 끔찍한 화면과 함성이 공개적으로 보도되는 것을 보고 들으면서, 물론 戰意를 다지고자 敵意를 불태우는 훈련을 하는 것 이상으로 오늘날 우리 사회는 지금 無知蒙昧한 原始社會로 퇴보하고 있음을 실감하는 것이 현실이다. 온갖 폭언과 저주와 악담과, 막말 그 이상의 아주 고약한 저질 상말과, 또 이를 실행하는 온갖 폭력 범죄가 그치지 않고 있다. 이들을 사회 지도자로 오르게 하는 정치무대와, 이를 내보내는 매스컴은 폐업시켜야 할 것이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계엄군과 시민군이 대치하고 있을 때, 일부 우리 젊은 군종신부들은 비무장으로 그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양쪽에서 쏘는 총알받이 표적이 되겠다고 주교님들에게 자원한 적이 있었다. 사제들이 쓰러지기 시작하면, 충혈된 눈으로 방아쇠를 당기던 손가락에 조금씩이라도 힘이 빠지기 시작하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무죄한 사람들이 얼마나 더 죽어가야 될 것인가? 통일의 영웅이 되려는 이들은 적지 않으나, 평화통일의 제물이 되려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애국심과 양심은 고사하고, 우선 사리판단의 분별력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도대체 무엇하러, 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正道를 걷는 합리적인 철학과 신념이 우선이다.
오늘의 우리는 모두가 저 미국인 군종신부의 소박하고 순수하고 진솔한 생활 자세와 정신을 마음에 되새겨야 하겠다. 또한 오늘의 指導者然하는 이들과 매스컴에 몸을 담고 있는 이들은, 전란 중이었는데도 우리 초등학교 어린이들 교과서에 저 종군 기자의 글을 올리던 60년 전 선배들의 수준을 회복하도록 힘써야 하겠다.
Msgr. By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