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공경가의 진실성
- 천주공경가天主恭敬歌는 진품眞品이요, 명작이다. -
1. 천주공경가의 출전을 보면, 이벽이 지은 천주공경가는 근래에 발견된 <만천유고>에 실려 전하고 있고, 또 천주가사로서 구전전승을 통해 오랫동안 기억되어 입으로 불리어져 전해왔음을 알 수 있다.
1-1 만천유고에 전하는 천주공경가天主恭敬歌는 이벽李檗이 지은 것으로, <만천유고蔓川遺稿>라는 책 속에 들어있으며, 이는 숭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러나 본문에 부기附記된 기록은; "天主恭敬哥+司 己亥年 臘月 於走魚寺 李曠奄(菴) 蘗 作哥+司" 로서, 만천유고본 필사자의 한문 이해력 부족을 드러내고 있다. 천주공경가는 일종의 포교가사로서, 4.4조 4音步格으로 17句밖에 안 되는 짧은 가사歌辭이다 (신학전망 23호, p.159 에서는 4.4조 1음보로 33구이다.).
1-2 천주공경가는 구전전승口傳傳承으로도 이어져 왔는데, 지금까지 발견되는 구전은 3가지이다.
1-2-1 최필선의 논문 속에, 김해의 백제순 비리시다(68세)의 천주가사가 전해지고 있다.
천주가사에 대하여서는 그동안 차인현 신부와 김진소 신부가 수집해왔는데, 최필선은 경상도 지역에서 백제순 비리시다(68세)를 1988년 9월에, 김해시 동상동 648에서 만나, 천주공경가와 천주십계, 영성체송을 채집하여 논문으로 발표하였다.(논문 3쪽).
천주가사가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1779년 (천진암)주어사강학 이후인데, 천주공경가와 십계명가 2편이 그것이다. 이중 영혼불멸, 불사금지, 천당지옥설의 시비에 대해 변(호)교론적 내용을 띠고 있는 천주공경가는 저자(최필선)에 의해 채집되었다. 그리고 그 선율이 언제부터 불러져왔는가에 대해서는, 천주공경가를 노래한 백제순씨(68세)의 증언으로 미루어, 1850년대 이전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즉 백제순씨가 10세 경에(1920생?-1931년) 장년층 부녀자들로부터 배웠다고 하는데, 그 장년층 부녀자들은 또 그들이 어릴 적에 (1890년 경, 그 당시의) 어른들로부터(1850년 경) 배운 것이라 하므로, 늦어도 1850년대로 보여 진다.(논문 31쪽).
당시 김해본당 소속의 백제순(비리시다 68세)씨의 자택에서 가창한 것을 최필선이 녹음하고 채보하였는데, 백제순은 (천주공경가의) 제목을 모르고 있었으나, 천진암성지의 ‘소책자’를 보고 ‘천주공경가’였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당시 교회에 라틴어 성가 이외에는 노래가 없었으므로, 경문책에서 기도문 낭송이나 천주가사의 합창이 즐겨 부르던 노래였다고 한다.(62-64쪽/사진첨부).
1-2-2 강영애 데레사 교수의 2012년 글에, 또 다른 2편의 ‘천주공경가’가 채록되었다.
1), 석우동은 충남 예산군 신암면에서 태어났으며, 본래 불교 신자였다. 당진군 고대면 항곡리로 출가해서 영세를 받았으며, 항곡리 공소 여회장을 역임하였다. 몇몇 신자들에게 천주가사를 가르쳐주었다고 한다.(104쪽, 주29에서, 내포 교회사 연구소의 김정환(요한) 신부님이 제공해준 자료 참고).
2). 조중환은 충남 서산의 독실한 구교집안에서 태어났고, 천주가사는 부친을 통해서 배웠다고 한다.(104쪽).
2. 천주공경가의 원문과 현대문.
2-1 천진암성지에서는 2014년에 교황 프란치스코의 방한 기념으로, 篆書체로 된 원문을 천진암박물관 앞에 비문으로 조각하여 세웠다.(사진 참조).
2-2 현대어로 번역된 본문은 아래와 같다.
1.어화세상 벗님네야 이내말씀 들어보소 / 2.집안에는 어른있고 나라에는 임금있네
3.네몸에는 영혼있고 하늘에는 천주있네 / 4.부모에게 효도하고 임금에는 충성하네
5.삼강오륜 지켜가자 천주공경 으뜸일세 / 6.이내몸은 죽어져도 영혼남아 무궁하리
7.인륜도덕 천주공경 영혼불멸 모르며는 / 8.살아서는 목석이요 죽어서는 지옥이라
9.천주있다 알고서도 불사공경 하지마소 / 10.알고서도 아니하면 죄만점점 쌓인다네
11.죄짓고서 두려운자 천주없다 시비마소 / 12.아비없는 자식봤나 양지없는 음지있나
13.임금용안 못보았다 나라백성 아니런가 / 14.천당지옥 가보았나 세상사람 시비마소
15.있는천당 모른선비 천당없다 어이아노 / 16.시비마소 천주공경 믿어보고 깨달으면
17.영원무궁 영광일세.
3. 천주공경가의 내용과 출처.
3-1 천주공경가는 4.4조 4音步格으로 17句밖에 안되는 짧은 歌辭이다(전망 159에서는 4.4조 1음보로 33구). 그러나 西敎 신봉자의 기록으로서, 한국천주교의 창립자 이벽의 신앙과 사상을 살필 수 있는 문헌으로서 큰 의의를 지닌다. 이벽의 나이 26세 때(1754-1779) 지은 것으로, 南人 학자들 사이에 신앙이 얼마나 침투하였는지 살필 수 있다. 하성래는 천주공경가를 크게 3단락으로 나누는데,
3-1-1 일 단락은 ‘어화세상 벗님네야부터 -천주공경 으뜸일세’까지로서, 천주공경이 으뜸임을 호소조로 노래한다. 이에 반하여 12-15년 후, 거상중의 이기경의 상소(cf. 김시준역 벽위편 150) 때문에 귀양을 가서 작성한 이기경의 심진곡尋眞曲에서는, ‘길가는 아ᄒᆞㅣ더라 --이ᄂᆞㅣ말ᄉᆞᆷ 듯고가소’.로 대꾸하였다.
1절. 어화세상 벗님네야 이내말씀 들어보소
“어화세상 벗님네야 이내말씀 들어보소.” 로 시작하는 이벽의 천주공경가는 <이벽전>에 표현된 대로, ‘수시 이성호 종학도와 현우현사(賢友賢士) 이씨 정씨네와 면학하시더라’ 하던 중에, 노래로 지어 부른 단체가였다. 삼강오륜에서 우선시하는 수직관계의 君臣, 父子, 夫婦의 관계에 앞서, 하느님을 공경하는 모든 사람들을 수평적인 벗의 관계로 (朋友) 보며 중요시하였기에, 노랫말의 제일 앞에 놓았다. 이에 대하여 이기경은 벽위편에서, ‘저들은 父子, 君臣, 夫婦의 인륜을 중히 여기지 않고, 다만 友誼를 존숭하니’ 하며, 순암 안정복이 타일러 고치려 하던 천진암강학 관련자들이 벗을 첫 자리에 두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다.
이같이 ‘어화세상 벗님네야’나 ‘어화청춘 소년네야’ 등은 조선후기 잡가, 단가, 민요 등에 많이 나타난다. 특히 최양업 신부의 ‘사향가’도 이같이 시작되고 있어, 천주가사가 우리의 문화적 토양에서 창작되었음을 알려준다.
2절. 집안에는 어른있고 나라에는 임금있네
김영수는 각주 4에서, ‘집안에는 어른있고, 나라에는 임금있네’의 내용이 천주실의에 나오는 ‘家止有一長 國止有一君’을 번역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필자(김학렬)가 살펴본 바로는, 천주실의에도 나오는 이 문단의 원천은 라명견(루지에리) 신부의 천주성교실록이다. 또한 만천유고 중에 나오는 십계명가에서 8계명에 해당하는 내용을 보아도, 강학에 참가한 사람들이 천주성교실록에서 8계명 무참방시비를 본 것으로 나타나므로, 이 문단 역시 천주실의에 앞서 저작된 천주성교실록을 보고 작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3절. 네몸에는 영혼있고 하늘에는 천주있네
4절. 부모에게 효도하고 임금에는 충성하네
5절. 삼강오륜 지켜가자 천주공경 으뜸일세
3-1-2 그 다음의 2단락은 영혼불멸, 불사금지, 천당지옥설의 시비를 노래하고 있다.(하성래, p. 166). 이에 대하여 신학전망 23권 164에서, 이는 깊은 신앙심이 아니면 우러나올 수 없는 표현이며, 간결명료한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고 한다.
6절. 이내몸은 죽어져도 영혼남아 무궁하리
7절. 인륜도덕 천주공경 영혼불멸 모르며는
8절. 살아서는 목석이요 죽어서는 지옥이라
9절. 천주있다 알고서도 불사공경 하지마소
10절. 알고서도 아니하면 죄만점점 쌓인다네
11절. 죄짓고서 두려운자 천주없다 시비마소
12절. 아비없는 자식봤나 양지없는 음지있나
13절. 임금용안 못보았다 나라백성 아니런가
14절. 천당지옥 가보았나 세상사람 시비마소
15절. 있는천당 모른선비 천당없다 어이아노
3-1-3 삼 단락은 결사結詞로서, ‘시비마소 천주공경 믿어보고 깨달으면 영원무궁 영광일세’ 이다. 믿어보라고 권유하는 짧은 노래이지만, 據理答之(거리답지, 교리에 근거를 갖고 답하는)한 이벽 성조의 목소리를 듣는듯하다.
16절. 시비마소 천주공경 믿어보고 깨달으면
17절. 영원무궁 영광일세. (永遠無窮)
3-2. 김진소 신부는 金眞召, 天主歌辭의 硏究, <교회사연구 제 3집>, 1981 한국천주교회사연구소, p. 259에서, 한국천주교회의 토착화 과정에서 생겨난 천주가사의 기원起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천주가사는 이조후기의 대중가사로서, 주로 4.4조의 형식으로 된 천주교 신앙의 가사이다. 대중가사의 형식은 대중 교화의 방법으로 작사되었다. 천주가사의 명칭은 ‘천주교 성가가사’, ‘천주찬가’ 등으로 부르는데, 필자(김진소)는 하성래씨와 함께 이를 ‘천주가사’라고 부른다.
천주가사는 교화나 수도의 방법으로 사용되어, 신앙의 합리성을 명쾌한 논리로 전개하고 있는데, 초기의 가사일수록 초보적인 교리를 관조觀照하고 있다. 저자의 해박한 교리지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독자를 성화시켜 영생으로 인도해준다. 천주가사는 개인의 신심에서 작사되지만, 그 내용은 비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므로 천주가사는 개인의 신앙고백이지만, 모든 교회의 고백이기 때문에, 참된 저자는 교회敎會이다.(p.267) 현재 전하는 천주가사는 186종에 이르는데(p.269), 도표를 보면, 1)십계명가. 2) 천주공경가(전망 1973). 3) 선종가 4). 사심판가 5). 공심판가로 이어진다.
p. 260 - 문학형식도 호소, 훈계, 권면, 설명조가 대부분으로, 이런 현상은 불교와 천도교에서 포교의 방편으로 사용하였다. -가사 자체가 지닌 특유의 감동력과 호소력으로 흡인력이 있고, 또 오래 기억에 남기 때문에 사용한 교수법이다. 일반적으로 평이한 우리말로 작사되었다. -복음전파 대상이 모든 사람이며, 이는 선교의 본래 입장과 부합한다. -가사들을 소장하고 전수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엄숙하리만큼 진지하고 , 또 가보家寶 이상으로 소중히 다루고 있다.
3-3 천진암성지에서는 2014년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124위 시복)기념으로, 천주공경가를 돌에 새겨 천진암박물관 앞에 세웠는데, 전면에는 만천유고본에 있는 천주공경가 원문을 새겼고, 그 후면에는 다음과 같이 천주공경가가 작사된 배경을 설명하였다.
천주공경가天主恭敬歌는 우리나라 천주교회 최초의 성가聖歌다. 1770년부터 1784년까지 천진암성지에 모이던 청소년靑少年들이 이벽李檗 성조聖祖를 웃어른으로 모시고(爲上), 신학문新學問 연구와 함께 자발적인 진리탐구의 강학講學이 절정에 오르던 1779년 겨울을 전후하여, 한국천주교회 창립 초기에 이벽 성조께서 지어 부르게 하던 노래로서, 실생활實生活을 비유比喩로 예시例示하면서 천주교의 기본 교의敎義를 보유론적補儒論的이며 호교론적護敎論的으로 읊은 복음선포福音宣布의 우렁찬 함성喊聲이었다. 특히 천진암 천학도장天學道場의 현우현사賢友賢士 도우道友들의 천학총림가天學叢林歌로서(其門下如叢林), 같은 시기에 지으신(下筆) 천학天學 교의敎義 교과서敎科書와도 같은 성교요지聖敎要旨와 더불어, 천주교 신앙의 움이 트고 싹이 돋는 우리나라 교회의 탄생(natalis)을 알리는 고고지성呱呱之聲이었다. 가사歌詞의 내용 외에는 원본原本과 곡조曲調가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우리나라 천주교회 신도들이 세상 끝 날까지 자자손손 부르며, 우리 신앙선조들의 자발적인 신앙을 지키고 아끼며 가꾸게 하는 신앙의 유산遺産이다.
2014년 6월 24일 한국천주교회 창립 235주년 기념일, 소농 이성숙 글씨, 태원 석재 각자刻字, 한국천주교회 수원교구장 이용훈 축성, 천진암성지 위원회 입비立碑.
2018. 6. 8. 사제성화의 날, 김학렬 若望 신부. 끝.
P. S. 각주와 사진이 뜨지 않으므로, 첨부된 원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