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장님을 본받아,
추석에 우리가 잊지 말고 좀 챙겨야 할 우리 사제들 !
추석 전에 군종신부님들을 찾으시는 교구장 주교님께 찬사를 드리며 본받읍시다.
2차 대전 말, 연합군의 각국 군종신부 6천여 명 총사령관이었던 뉴욕 대교장 Spellaman 대주교님(후에 추기경 수임)은 유럽 전선과 아시아 전선, 심지어 일본의 가미가제 자살 공격기를 맞아 침몰 위기에서도 분투하는 미군함대의 극동 해양 전선에까지 다니시며, 포성이 그치지 않는 격전의 현장들을 불철주야로, 하루에도 여러 전투지역을 돌며, 모든 군종 신부님들 중에 단 한 분도 빠트리지 않고 전부 찾아보며 격려했다는 일화가 미국 대사전에 나오고 있을 정도입니다. 독일과 일본의 항복을 받도록, 연합군을 승리로 진격시키는 精神戰力의 현장 지휘관 이었습니다.
1948년 일본 항복 후, 미국대통령 대리 해외 전권특사로서, 하지 중장 일행를 대동하고 인천에 상륙, 조선에 입국하여, 京城에 入城하는 즉시, 중앙청에서 일본 총독의 항복 서명을 받고, 북한 땅을 포함하는 당시 全 朝鮮 내의 일본군 무장해제를 명하고, 미국의 조선 점령군 사령관 하지중장으로 하여금, 일본군 무장해제 실시와 국내 행정 장악 관리를 명한 것도, 미국 대통령 전권대리, 군종 사령관 스펠만 대주교 였습니다.
자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유지와 수호에 군종신부님들의 공헌은 지대합니다. 30 여년전, 60 여개 사단 중에, 20여개 사단장들과 군 고위층을, 영관장교 시절부터 신자화시킨 것은 군종신부님들의 업적이며, 이 지휘관들은 현역 무관으로서는 물론, 예편 후에도, 천주교 신앙으로 유물론적 사회주의로 갈수 있는 武官政治나 長期 獨裁化의 유혹을 거부하며, 예방하였다고, 많은 지성인들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신도들의 헌금봉헌 현장에서 사목하는 모든 본당신부님들과 우리가 연례행사같은 설이나 추석 때의 금일봉 후원(?)으로만 만족해서는 부족하고, 평소 군종신부님들과 일심동체가 되어, 지금같이 核戰雲이 짙어가는 국가 위기에,국방을 함께해야 하겠습니다. 최근까지도(2014) 늙은 필자역시,가까운 서부전선 군부대들을 매년 한두차례, DMZ까지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지난 30여 년간, 군종신부님들이 천진암 성지에 소수 신자들과 함께 종종 순례오면, 자선단체 지도신부님들이나 해외선교 중인 신부님들에게와 마찬가지로, 천진암 성지에서는 일반 순례자와 함께 올리는 미사 주례를 맡겼으며, 미사헌금과 미사예물, 일체를 성지에서 손대거나 계산하지 않고, 헌금 바구니 채로, 또 봉투 채로, 모두를 드려 왔습니다. 항상 다소간의 부채로 시달리고 쪼들리고 들볶이던 때일수록, 우리 직원들에게도,국방에 참여하는 더욱 큰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지난 해에는, 광주산맥 심산궁곡에서 며칠간 야간 특수훈련하는 장병들을 위하여, 마치는 날 커다란 돼지를 두마리 잡아다가 주며, 우리 직원들이 삶아드릴까 했더니, 장병들 자신이 요리할테니, 저녁 때 오라고 하여 갔다가, 그 많은 식구들이 먹을 돼지 요리를 얼마나 맛있게 하였는지, 여느 돼지고기 음식점에서도 맛볼 수 없을 정도로 잘하여, 우리 직원들이 정말 놀랐읍니다.
지난 삼십여년 간 이 험산에서 훈련하는 장병들이 천진암 성지 휴게소에 들리면, 아무리 많은 수라도, 커피와 라면은 무제한으로 요기하고 가도록, 직원들이 봉사합니다. 한참 먹을 때의 젊은 용사들이 비에 젖거나 추울 때, 즐겨 먹는 것을 보며, 우리는 모두 한가족처럼 느낍니다.
곤궁한 사람은 오히려 더 궁핍한 사람들만이 거들어준다는 진리의 속담처럼, 사실, 안 써도 될 때 쓰는 것을 낭비라 하고, 써야만 할 때, 안 쓰고, 못 쓰는 것을 인색하다고 말한다지만, 한 때 인색한 사람은 평생을 궁색하게 살게 마련이랍니다. 요즈음 있는 교우들이 더 인색하다는 소리를 종종 들을 때마다 기가 막힙니다.
특히 북한은 아직도 무신론 사회주의 사회라서, 아직도 사제와 수녀들이 한 명도 없고, 50여개의 본당들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으며, 지난 6.25 전란을 전후하여, 82명의 사제들과 35명의 수녀들이 참살당하고, 29명의 대신학생들과 수사들도 처형되었으며, 5명의 주교와 교구장직의 고위 성직자들을 구속, 고문, 일부 처형되어, 우리가 거듭 요청하는, 순교한 저 성직자 수도자들, 즉,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自由를 위한 殉敎者들, 正義의 勇士들, 眞理의 代辯者들 무덤조차, 북한에서는 아직까지도 묵묵부답으로 우리에게 알려 주지 않고 있습니다. 종교적 信仰의 自由는 人權伸張의 척도입니다.
한 해가 다 가고 저물도록, 매주 교회에서 단 한번도, 북한동포들의 自由不在 無宗敎 생활 에 대하여 거론하지 않는다면 이는 우리의 직무유기가 아닌가?, 동포들의 이러한 사정에 대하여 우리는 침묵할 권리가 없으며, 묵인할 의무도 없습니다. 알립시다. 말합시다. 자유가 넘치는 여기서까지, 우리 천주교 신자들까지 침묵한다면, 누가 말하겠습니까?! 침묵은 묵인이고, 同助로서 공범자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같은 韓民族으로서,북한사회를 흉보거나 욕하지 말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대한민국 정부와 사회에 대하여 말하듯이, 북한 사회에 대하여도 사실은 사실대로 말하고 알리며, 너무 심한 일에는 같은 한민족 한 형제로서 지적해야 합니다. 최근 몇년간 벌어지고 있는 공개처형이나 탈북자들에 관해서는 침묵할 수가 없읍니다. 전 세계인들이 다 알고 떠들어대며, 중국인들까지도,,,,북한도 그러한 사형제도를 해서는 안됩니다. 북한도 고칠 것은 고치게 해야 합니다.
흔히 하기 쉬운 말로, 평화통일, 평화통일, 외치지만, 平和統一이 공짜통일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統一戰爭보다 훨씬 더 어려운 희생이 요구되는 것이 평화통일입니다. 끊임없는 기도와, 보속과, 극기와, 희생과, 인내와, 이해와, 관용과, 애정과, 양보와, 용서와, 봉헌과 신덕이 기초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 평화통일의 길입니다. 그리하여 구 소련과 소련권의 종교자유와 정치 민주화가 이루어졌듯이, 流血革命으로 저질러진 공산주의 배고픈 사회를, 無血改革으로, 폴랜드를 비롯한 東西獨 통일까지 이룩하였읍니다.
조국수호와 평화통일을 위하여 불철주야 고생하는 우리 장병들에게, 추석을 맞는 군종신부님들을 잊지말고, 우리 교우들은, 교구장 주교님을 본받아, 이번 추석에 우리가 좀 챙겨야 할 우리 군종사제들과, 평소에도 자주 함께 하도록 해야하겠읍니다. ! 이 늙은이도 군부대의 초청을 받을 때마다, 장병들이 용기를 내게 하고, 후방의 우리가 단 하루도 장병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확신시켜주고자 하였읍니다.
<서부전선1사단 전진부대 3개 대대 최전선 GP근무 교대반, 自由를 위한 殉敎의 각오로, 正義를 위한 勇士들이 되어, 眞理를 알리며, 목숨을 바치려는, 장병들에게, (2013. 09 .06>
"Martyrs of Freedom, Warriors of Justice, Speakers of Truth !"
변기영 몬시뇰, 김학렬 신부, 육군 전진부대 방문(2012.11.21)
변기영 몬시뇰, 김학렬 신부, 육군 전진부대 방문(2012.11.21), 사단장님의 1사단 연혁 설명.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보다 1년 앞서서, 1947년에 자원병으로 조직된 1사단의 피로 물든 발자취를 알려주는 사단장님! 조국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이 되어, 대구와 부산 지역만 남았을 때, 연합군의 지원을 받으며, 낙동강 전투의 주력부대로서 오늘날 전 세계의 10대 경제대국 대한민국이 있게 한 부대입니다. ,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화랑담배 연기 속에 잠자는 전우야!
터지는 폭탄을 무릅쓰고, 앞으로 앞으로! 한강수야 잘 있느냐? 우리는 돌아왔다!,,,
흙에 묻힌 철갑모를 손으로 어루만지니, 떠오른다 네 얼굴이 달같이, 별같이!,,,
서울탈환의 중심 전력으로서,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38선을 넘어서,
북으로, 북으로, 전진하던 1사단! 평양을 점령하고, 앞록강과 백두산 天池까지 진격하였던,
제1사단(백선엽 장군 부대)은 지금도 끓고 불타는 조국애와 민족정신으로,
韓民族의 자유와 정의와 진리의 순교자다운 용사로서,
통일에 신명을 다바치는, 대한의 건아들, 우리를 지키는 용사들입니다.
변기영 몬시뇰, 김학렬 신부, 육군 전진부대 방문(2012.11.21)
변기영 몬시뇰, 김학렬 신부, 육군 전진부대 방문(2012.11.21)
변기영 몬시뇰, 김학렬 신부, 육군 전진부대 방문(2012.11.21)
변기영 몬시뇰, 육군 전진부대 방문(2013.05.31)
변기영 몬시뇰, 육군 전진부대 방문(2013.05.31)
변기영 몬시뇰, 육군 전진부대 방문(2013.05.31)
변기영 몬시뇰, 육군 전진부대 방문(2013.05.31)
변기영 몬시뇰, 육군 전진부대 방문(2013.05.31)
변기영 몬시뇰, 서부전선 1사단 전진부대 3개 대대 방문, 강의(2013.09.06)
변기영 몬시뇰,서부전선 1사단 전진부대 3개 대대 방문, 강의(2013.09.06) 광주대교구 출신 군종신부님
변기영 몬시뇰, 서부전선 1사단 전진부대 3개 대대 방문, 강의 전사자 유해 참배 (2013.09.06)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한 줌 흙이 되어,,,우리의 오늘을 마련하고, 우리를 지켜주신 용사의 넋이여!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주님, 이 용사의 영혼이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옵소서!
(변기영 몬시뇰, 서부전선 1사단 전진부대 3개 대대 방문, 강의, 전사자 유해 참배(2013.09.06)
변기영 몬시뇰, 서부전선 1사단 전진부대 3개 대대 방문, 강의(2013.09.06)
변기영 몬시뇰, 서부전선 1사단 전진부대 3개 대대 방문, 강의(2013.09.06) 밤새도록 올리브 동산을 오르내리고도 피곤한 기색없이 강의를 듣는 용사들 !
변기영 몬시뇰, 서부전선 1사단 전진부대 3개 대대 방문, 강의(2013.09.06)
변기영 몬시뇰, 서부전선 1사단 전진부대 3개 대대 방문, 강의(2013.09.06)
변기영 몬시뇰, 서부전선 1사단 전진부대 3개 대대 방문, 강의(2013.09.06)
변기영 몬시뇰, 서부전선 1사단 전진부대 3개 대대 방문, 강의(2013.09.06)
“대한민국 만세 ! 전진부대, 1사단 만세 ! 만만세 ! 다시 한번 더 만세!” 를 부르고 돌아와서,
하루속히 남북이 전쟁을 피하고, 평화통일을 이루도록, 천진암 성지의 [세계평화의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바쳤습니다.(변기영 몬시뇰, 서부전선 1사단 전진부대 3개 대대 방문, 강의(2013.09.06)
변기영 몬시뇰, 서부전선 1사단 전진부대 3개 대대 방문, 강의(2013.09.06)
한 해가 다 가고 저물도록, 매주 교회에서 단 한번도, 북한동포들의 自由不在 무종교 생활에 대하여, 우리는 침묵할 권리가 없으며, 묵인할 의무가 없습니다. 알립시다. 말합시다. 자유가 넘치는 여기서까지, 우리 신도들까지 침묵한다면, 누가 말하겠습니까?! 침묵은 묵인이고, 同助로서 공범자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흔히 하기 쉬운 말로, 평화통일, 평화통일, 외치지만, 평화통일이 공짜통일 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통일전쟁보다 훨씬 더 어려운 희생이 요구되는 것이 평화통일이 아닙니까? 끊임없는 기도와, 보속과, 극기와, 희생과, 인내와, 이해와, 관용과, 애정과, 양보와, 용서와, 봉헌과 신덕이 기초를 이루어야만 되는 것이 평화통일입니다.
조국수호와 평화통일을 위하여 불철주야 고생하는 우리 장병들이, 이번 추석을 맞아 군종신부님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상상하고, 군종신부님들을 잊지 말고, 연례행사뿐 아니라, 평소에도 자주 함께 하도록 합시다.
특별히 戰雲이 짙어지는 이번 추석에, 교구장님을 본받아, 우리가 좀 챙겨드려야만 할 우리 사제들을 다른이들에게 맡겨서야 되겠읍니까 ! 성탄이나 큰 축일이면, 軍과 民이 함께하기 위하여, 종교단체마다,장병들의 고향 마을마다, 저들을 찾아가는 일부 선진국의 국민들 본을 받읍시다.
이 늙은이도 군부대의 초청을 받을 때마다, 장병들이 용기를 내게 하고, 후방의 우리가 단 하루도 장병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확신시켜주고자 하였읍니다. <서부전선1사단 전진부대 3개 대대 최전선 GP근무 교대반의, 전 민족의 自由를 위한 殉敎의 각오로, 正義를 위한 勇士들이 되어, 眞理를 알리며, 목숨을 바치려는, 장병들을 생각하며,,,, (2013. 09 .06>
"Martyrs of Freedom !, Warriors of Justice!, Speakers of Truth !" .
Msgr.Byon
*박찬희 관리국장이 서울 goodnews으로 퍼날랐는데, 올린 노병규 형제의 댓글 속에, 김육웅 신부님 이야기를 하였길래, 아래 몇자를 댓글에 답글 삼아 적었읍니다.
노병규 형제님의 댓글
† 찬미 예수님! 박희찬님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저도 전진부대(제1보병사단) 15연대 3대대에서 복무하다가 1977년도에 전역했습니다.
지금도라산역(당시에는 벌판이었음)근처에서 OP근무를 했습니다. 저는 당시 8.28 도끼만행사건때에 당시 현장근처에서 근무를 했는데 그땐 정말 전쟁이 나나 했습니다. 당시 군대에 몇 안되는 군인성당인 전진성당이 있었고 군종참모님은 김육웅신부님이셨습니다. 그때가 그립습니다.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전우들이..
위 댓글에 대한 답글삼아 보낸 내용.
" 역전의 용사, 존경하는 노병규 형제님에게, 감사합니다.
김육웅 신부님은 본래 대전교구 소속 신부님으로서, 서부전선 1사단 군종신부님으로 계시다가,중령(?)으로 진급한 후, 1972년(?) 말, 용인에 창설되던 3군 사령부의 3군사 본부 군종신부로 부임하였는데, 그때까지 아직 사령부의 성당도, 사제관도 없어서, 당시 용인본당 사제관에 오셔서, 변기영신부(용인본당 주임)와 함께,같은 사제관 건물에서 1년가까이 함께 사시며, 3군사령부 천주교 성당 부지 마련과 성당 건축, 사제관 건축을 하셨고, 후에 예편하신 후에는, 미국에 가셔서, 교포사목을 하시다가 ,거기서 선종하셨읍니다. 지금 생존해 계시다면, 아마 90세(?) 전후가 되실 것입니다. 일 많이 아주 잘 하시는, 열심하고 유능한 선배 사제였읍니다.
김육웅 신부님이 용인 본당에 오시던 날, 사전에 연락도 없이, 이불, 책보따리, 등을 트럭에 싣고 와서, 성당 마당에 풀면서, 미리 양해도 연락도 없이 와서 미안하지만, 이삿 짐 싣고 그냥 쳐들어가면, 변기영 신부가 마음이 약해서, 못들어오게 하거나, 내쫒지는 못할거라고 말하는 신부(수원교구 소속 황익성 신부님 ?)가 있기에,그냥 왔어 ! 그대신 저녁은 내가 살께! 당시 용인에는 나무 걸상에 앉아 사먹는 짜장면 집 밖에 없을때라,,,우리는 좁은 사제관에서 1년을 재미있게 함께 살았읍니다.
김육웅 신부님은 서울 부자본당에 모금하러간다고,주일날 아랫마을 둔전리에 있는 55사단 아침미사를 대신 드려 달라기에, 찦차를 몰고 가다가, 운전이 미숙한 나는 교통사고가 나서, 우편 골반이 두번이나 부러져, 수원 빈센트병원과 미아리 성가병원에 60여일 입원한 적이 있었죠. 지금은 건강합니다.
김신부님은 재주가 많아서, 고 스톱이 처음 생겼을 때, 어디서 배웠는지 배워가지고 와서, 내게도 고스톱 선생노릇하며 정성껏 가르쳤으나, 머리가 아둔한 나는 영영 못배워서, 아직도 고스톱을 못하는 빙신이랍니다.
2015/9/24.<변기영 몬시뇰 알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