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성년 맞이는 프랑스 파리에서’라는 홍보물이 거의 1년 전부터 세계 주요 매스컴에 광고를 거듭하면서, 프랑스 파리 시의 중심가 대로변 양쪽의 가로수 마로니에 나무들도 온통 황금색 반짝이로 장식하여, 그 황홀 찬란한 풍경이 지상 천국으로 착각할 정도라고 하였으며, 시내 유명 호텔들은 ‘예약 만원 사례’ 라는 소리가 오히려 새 경쟁 선전 광고가 될 정도였다니!
그도 그럴 것이 천주교회가 2천년 역사를 마치면서 제3천년대로 접어드는 해가 마침 ‘성 바오로 사도 탄생 2000주년’이 되므로, 로마 교황은 그 해를 ‘대성년(大聖年)’으로 선포했고, 유럽 각국에서는 대목장을 보려고, 앞다투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 중에도 프랑스 파리 시내는 우리 돈 수백억 이상의 예산으로 예술적인 실력을 발휘해, 대성년에 전 세계에서 오는 유명인사들 손님맞이에 최상의 정성을 다하였다는 말이 나돌고 있었다.
그러나 1년 후, 백과사전에까지 기록된 통계를 보니, 천주교회 대성년 2천년에 로마의 사도 성 베드로 대성당과 성 바오로 대성당 참배 차 로마를 찾은 외국 순례객들은 3천500여만 명이 넘었다고 하였으나, 파리는 태풍피해 복구사업으로, 아예 대성년 맞이 흥행은 통계조차 없었다.
그 이유는 2000년 대성년 맞이 직전, 1999년도 성탄절, 즉 12월 22일(?) 경, 뜻밖에도 최악의 태풍급 회오리바람이 파리 지역에 약 3일간 불어 닥쳐 휩쓸고 가는 바람에, 노트르담 대성당 지붕의 오른쪽 첨단 십자가 받침 돌축대까지 한쪽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파리의 성탄절은 전무후무한 ‘성탄’ 아닌, ‘성난’ 아수라장이 되어,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었던 때이었다.
심지어 파리에서 100㎞ 이상 떨어진 베르사유 고궁 마당에 서 있던 오래된 큰 참나무와 미루나무들도 부러지거나 뿌리째 뽑혀 나뒹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성년 사순절에 로마를 가다가 파리에 들러, 일부러 베르사유를 둘러본 필자 역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에 잘 알던 노인 신부님은 저녁을 함께하시면서, “돈벌이 위한 손님맞이에만 정신이 팔려서, ‘성탄 하시는 아기 예수님’ 맞이는 아주 잊어버렸어! 하느님이 노하셨지!” 하고 말씀하셨다. 성탄의 의미와 가치와 정신과 교훈을 망각하고, 환락의 돈벌이에만 환장한 세대가 성탄절을 악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다.
오늘의 인류가 전쟁을 버리고, 특히 핵전쟁을 피하려면 성탄 순례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업주의나 경제제일주의에만 집중하지 말고, 아기 예수를 본받아 온 인류가 성탄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약소국들과 동맹이니, 혈맹이니, 하는 강대국들은 자기네 나라 경제발전만이 약소국들이 존립해야 하는 ‘유일한 목적’으로 삼도록 강요하지 말고, 약소민족들과의 약속을 헌 신짝처럼 내버리지도 말며, 광란의 칼춤으로 대국 황제로 뽐내는, 이 시대 골목대장 ‘뻔돌이’ 행세를 그쳐야만, 다가오는 핵전쟁을 인류가 모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도 아기 예수를 본받아 모두 성탄 하러 가자! 주막집 마구간 말구유는 가정마다 직장마다 마을마다 우리의 성탄을 기다리고 있다. 성탄 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는 마을이 곧 베들레헴이고, 성탄 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는 가정이 곧 주막집 마구간이며, 성탄 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는 곳에 바로 아기 예수가 성탄 하여 계시며, 전란이 사라지게 하는 그리스도의 평화가 깃들게 될 것이다.
높은 지위보다도 필요한 역할이 더 중요하다. 크고 넓은 집, 좋은 안방은 쳐다보지도 말자. 누구나 즐기는 그런 곳은 아무나 가서 앉을 수 있지만, 마구간 말구유에는 아무나 와서 눕지 못한다. 마음이 아기 예수를 닮은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들만이 차지하는 자리다. 온 인류와 특히 신앙인들의 성탄하는 생활만이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민족 속에 성탄의 평화를 깃들게 함으로써, 핵전운(劾戰雲)도 영구히 사라지게 하는 광풍제월(光風霽月)이 될 것이다.
변기영 천주교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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